가파도 일기 3 : 고양이(고냉이)
2023.7.7.
친구가 가파도에 오게 된 계기도 고양이였고, 내가 방이 아니라 거실에서 - 거실이라고 말해봐야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에 불과하지만 - 머물게 된 것도 고양이 때문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친구는 고양이 덕분에 가파도 살이를 하게 된 것이고, 나는 고양이 냄새 때문에 가파도에서 살지 말지 잠시라도 고민했던 것.
나는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쯤이 좋다. 고양이가 낯선 동물에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듯이, 나도 낯선 동물(?)에 대해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다.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친밀하게 훅 다가오며 형이니 오빠니 호칭하는 사람들은 왠지 불편하다. 싫은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때나 되면 어련히 친해질까 봐 그 새를 못 참고.)
그래서 고양이들이 갑자기 다가와 친한 척(?)하면 남들은 만지고 쓰다듬고 끌어안기도 잘 하드만, 나는 그냥 가만있는다. (나랑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해. 이렇게 훅 들어 오지는 마.) 친밀감이나 적대감이 아니라 사물감을 표시하면서. 그러면 십구팔구 조금 머물다가 무심하게 물러난다. 나는 일정 기간 동안은 이런 무심한 거리감을 즐긴다.
나는 집고양이들의 친밀감 표시가 적응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야생동물들은 이렇게 훅 다가오지 않는다.(내가 먹잇감이 아니라면.)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 중 사람에게 쉽게 접근하는 고양이는 십중팔구 집고양이 경력을 가진 것이리라. 예전에 한겨레신문 문화부기자였던 고종석씨가 가르랑 말과 으르렁 말을 구별하여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일명 고양이 언어와 개 언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든 동물은 친해지면 가르랑 대고, 낯설면 으르렁 댄다. 집고양이들이 가르랑거리는 것은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가파도에 고양이가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때부터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파도 바다들레길을 산책하다 보면 고양이처럼 생긴 돌이 보인다. 예전에 그 옆에 표지판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 표지판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찾은 것이다. 현재는 역사성과 서사성이 없는 밋밋한 문구가 써있다.(아래 사진) 가파도에 주민들이 이주해와 살기 시작할 때 고양이도 따라와 살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이 처음에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보리와 고구마만으로 연명하자 굶주림에 시달리던 고양이들이 바닷가로 와서 태풍에 밀려오는 물고기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뭔가 서글프고 고달프고 아련한 정서를 자극한다. 현재의 집고양이들은 굶주리지는 않지만, 물고기가 아니라 사료를 먹는다. (배고프지는 않겠지만 맛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보다 2주 앞서 가파도에 와서 고양이방을 치우고 고양이들을 돌봤던 친구의 고양이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나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인 줄 알았는데, 여섯 마리였다. 친구는 고양이방을 치우며 그 여섯 마리를 한 컷에 담을 수 있었던 것.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한꺼번에 본 적이 없다. 친구에게 물으니 새끼 고양이들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어서 자신도 한꺼번에 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내가 부러 사료를 주며 기다렸지만 여섯 마리를 한 컷에 담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심지어 새끼 고양이의 단체 사진까지부모 고양이는 공동으로 육아를 한다. 새끼 고양이들은 엄마(검은 고양이) 품에서도 잘 자고 아빠(노란 고양이) 품에서도 잘 잔다. 밤이 되면 외부 경계는 아빠 고양이가 주로 하지만, 낮이 되면 엄마 고양이가 하기도 한다. 그때 아빠 고양이는 문밖으로 나가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가파도에는 길고양이가 집고양이만큼이나 많아 보인다. 간혹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눈에 띄는데 아마도 주인이 사라지자 길고양이가 된 듯하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의 짐작일 뿐, 생태학자나 주민에게 확인한 사실이 아니다. 더욱이 고양이들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 사실이 조금 서럽긴 하다. 아주 가까이 살면서도 언어장벽에 막혀 속시원히 소통하지 못하는 이 근원적 거리감!)
내가 찍은 사진들은 가족 구성윈이 부족하다.어쨌든 친구가 집을 비우면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이 된다. 아마도 가파도에 살면서 가장 친해져야 할 생명체일 것이다. (고양이 말고 정말 가까이 사는 놈들이 있는데 이놈들과는 결코 친해지고 싶지 않다. 모기와 온갖 벌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