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5 : 환대

2023. 7. 9.

by 김경윤

5일간 친구와 같이 지내본 결과, 2주 동안 친구는 혼자 가파도에서 살았지만, 외롭게 산 것은 아니었다. 예의 바른 친구였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고, 붙임성 있는 친구였기에 말을 걸고 싶은 상대에게는 편하게 말을 붙였다. 그래서 가파도에 큰비가 내려 오도가도 못하는 낚시꾼들에게 말을 붙여 인연을 만들었고, 낚시꾼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조촐하게 차와 음식을 대접했고, 낚시꾼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들이 머무는 민박집에 친구를 불러, 애써 잡은 비싼 뱅어돔을 회를 썰어 친구를 대접했다. 작은 친절이 큰 응대로 돌아온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파도 선착장에 있는 매표소 직원에게 말을 걸어 인연을 만들더니, 어제는 그 직원을 집으로 초대하여 점심식사를 대접했고, 오늘은 매표소 근처에서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더니, 다시 그 직원을 집으로 초대하여 떡라면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친구나 매표소 직원이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만큼 자신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간단히 끝날 것 같았던 점심시간은 어제, 오늘 3시간을 넘게 이어졌다. 나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어주고, 간간히 이야기를 거들며 시간을 같이 보냈다. 매표소 직원은 심지어 지나가는 나를 불러 아내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매표소 직원 이야기는 나중에 한 번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매표소 직원은 우리에게 일반인 들어갈 수 없는 장소를 친절하게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가 빌려준 전동 퀵보드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오늘 저녁에는 각종 공예품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더니, 아주머니 집으로 저녁 초대를 받았다. 친구는 6시가 가까이 오자, 부추 양파전을 굽기 시작했다. 초대를 받았을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면서. (아, 이 오지랖이라니.) 나는 7시에 줌수업이 잡혀있어, 아주머니 집에 간단히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공예품 아주머니 외에도 한 아주머니가 같이 앉아있었다. 친구는 그 아주머니들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어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나는 수업시간도 있고 해서 슬쩍 빠져나왔는데, 친구는 조금 있다가 아주머니에게서 반찬을 두 종류나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공예품 아주머니가 준 토종배추로 담근 김치와 오이짱아치

낯선 사람을 환대하고, 낯선 사람에게 환대받는 이 환대의 순환을 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체험하게 된 것이다. 워낙 마을이 작아서 내가 오자마자 동네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친구야 말할 것이 없겠지.) 내 친구 혼자서 지낼 때는 말수도 적고 조용했었는데, 내가 찾아오니까 자주 웃고, 말도 많아졌다고 골목 앞 식당 아주머니는 친구를 장난으로 골렸다. 나 역시 친구와 자주 산책을 하면서 보는 주민마다 인사를 나눴더니, 처음에는 맹숭맹숭하게 인사를 받던 분들도, 어느새 얼굴에 웃음기를 띠고 있다. 친구는 주민들에게 작가 친구가 놀러 왔다며, 앞으로 한 달을 살 사람이니까 잘 부탁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친절과 환대의 그물코를 나에게 걸어주고 있었다. (나는 친구가 심어놓은 좋은 이미지 덕분에 주민들에게 덩달아 좋은 사람이 된 듯하다.)


내일이면 친구가 가파도를 떠난다. 친구집 제사도 있고,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있다며 하룻밤 본토(제주도)에서 나랑 같이 여행하며 지내기로 했다. (친구는 제주도에서도 만날 지인들을 섭외하여 연락을 해놓았다. 아마도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친구와 제주도에서 1박 지내고 나서 친구는 김포로, 나는 가파도로 돌아간다. 친구가 떠나고 나면 이제 가파도에서는 나 홀로 지내야 한다. 나는 친구처럼 주민들을 초대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진 못할 것이다. (웃는 얼굴로 인사는 넙죽넙죽 잘하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만들어놓은 환대의 그물망이 있어, 혼자 지내는 나날이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가파도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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