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6 : 별책부록 같은 날

2023.7.10.

by 김경윤

오늘 친구가 가파도를 나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일이었다. 내일 친구가 나갈 때 친구 따라 배를 타고 운정항에 가서 2주간 먹을 식량과 물품들을 사서 다시 가파도로 돌아오는 것이 나의 간단한 일정이었다. 그런데 즉흥적으로 계획 잡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하루 전에 제주도로 들어가서 1박 2일을 같이 지내다가 자기는 비행기 타고 고양으로 가고. 나는 배를 타고 가파도로 돌어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어떠긴 뭘 어때, 무조건 콜이지!)


그리하여 아침식사를 간단히 떡만둣국으로 해결하고, 고양이들 밥과 물을 잔뜩 채워놓고, 전기단속, 문단속하고 아침 9시 10분쯤 가파도 항구에 도착했다.(가파도 바닷가에서는 해녀분들이 부지런히 자맥질을 하고 계셨다.) 우리는 2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가파도를 떠났다. 운정항에 도착해서 10시에 출발하는 151번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다시 제주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서귀포로 달렸다.

1차 여행지는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이다.(제주도를 잘 아는 송원석 선생이 준 정보를 따랐다.) 맛난 먹거리들이 즐비한 시장통을 돌아다니다가, 점심은 가장 무난한 흑돼지 두루치기와 고등어구이 백반을 먹었다. (나이가 먹으니까 별난 음식보다 무난한 음식이 편하다.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정갈하고 점심정식은 깔끔했다.

그새 지인과 약속을 잡은 친구는 헬로 서귀포 호텔 2층 커피점으로 가고 나는 시장을 좀 더 구경했다. 친구의 약속이 끝나자 같이 서귀포항구로 갔다. (오래전 아이들과 가족여행을 왔을 때 체험했던 잠수함 투어장이 보였다. 잠수함을 타기에는 이제 나이가...... 우리는 돈을 쓰는 잠수함 체험보다는 시간을 쓰는 새섬 산책을 하기로 했다. (새가 많아서 새섬이 아니라 억새 등 야생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새섬이다.) 새섬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파도의 웅장함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가파도의 파도와는 스케일이 다르다. 친구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사람이든 파도든 큰 물에서 놀아야 해."

새섬에서 바라보는 서귀포항과 파도. 그리고 새섬에서 자란다는 야생초.

시간이 많이 흘러 숙소의 체크인할 시간이 넘어버렸다. 가기 전에 서귀포 이마트에 들러 가파도로 가져갈 부식품들을 구매하고, 숙소에서 먹을 맥주와 안줏거리도 챙겼다. 숙소는 성산 일출봉 근처에 있는 아담한 호텔이다. 도착하니 6시가 다됐다. 체크인하고 방으로 들어가 샤워하고 빤스바람으로 침대에 앉아, 저녁 겸 술안주인 초밥세트와 광어연어 세트로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자, 몸이 노골노골해지고 종일 돌아다닌 피곤이 밀려온다. (친구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와 로비에서 이 글을 쓴다. 계획대로라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일출봉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비자림으로 갈 예정이다. (예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작은 호텔이라 탁자 하나 없어 침대 위에다 안줏거리를 놓고 맥주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던 가파도 생활에서 별책부록 같은 하루를 선물 받았다. 현재(present)가 선물(present)이라던데, 오늘은 특별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자,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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