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7 : 다시, 가파도로!

2023. 7. 11.

by 김경윤

친구가 새벽에 일어나 나가더니 비를 맞고 돌아왔다. 구좌-성산 곶자왈에 갔다가 중간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쫄딱 젖었단다.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급하게 한다. 나는 어제 사다 놓은 컵라면을 준비한다. 오늘이 제주도를 돌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니 비행기가 뜨는 3시 전까지 알차게 돌자며, 호텔에서 왕뚜껑으로 배를 속이고 천도복숭아 하나씩을 입에 물고 차에 올랐다. 오전 7시 반이었다.


일단 계획대로 성산 일출봉으로 향했다. 비와 안개로 일출은 포기했지만 일출봉 주변이라도 돌아볼 생각으로다가. 그런데 비 온 후라서 그랬는지 입구 매표소를 지키는 직원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님 우리가너무 일찍 왔나?) 입구에 있는 절 주변을 돌아보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음 장소를 묻자, 친구는 1시까지 운진항에 데려다주겠다며, 가면서 좋은 장소가 있으면 즉흥적으로 들어가 보자 한다. (Why not! 친구의 배려로 편하게 가파도로 다시 들어가게 생겼다.) 흔쾌히 동의하고 차에 오른다.

도로를 따라 가는데 날씨가 계속 변덕을 부린다. 비가 왔다가, 안개가 꼈다가, 구름이 걷혀 날씨가 개였다가, 다시 어두워졌다가. 그 와중에 거대한 풍차언덕을 지나가며 풍차가 도는 모습도 한 컷 찍었다. 달리다 차에서 처음 내린 곳은 '거슨새미오름'이었다. 비자림 찻길을 따라 쭉 오다가 표시판이 있어, 비포장길을 뚫고 들어간 곳, 뱀이 나올 곳처럼 원시림의 모습을 보이는 곳, 가파르고 길이 점점 좁아져서 샘까지 400미터만 가보자고 서로를 격려한 곳, 더 가면 진짜로 험해질 것 같아 탁 트인 풍경 한 장 찍고 내려왔다. (정상까지 오를 시간도 체력도 없고.)

원시림 같은 숲길을 통과하여 400미터까지 오르자 시선이 확 트이는 풍경이 잡힌다.

두 번째 즉흥적으로 선택한 곳은 한라수목원이다. 주차비만 받고 입장료는 무료인 이곳은 생각보다 넓고 체계적으로 꾸며놔서 한라산 생태계를 공부하는데 아주 적격이다. 친구랑 감탄하며 돌다가 <와호장룡>에 나올 법한 대나무 숲길이 있어 괜히 폼 잡고 한 장씩 박았다. 내려오는데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들과 견학을 왔다. (아이고, 이쁜 것들. 참 잘 왔다. 좋은 구경 많이 하거라.)

한라수목원 대나무 숲에서 폼 잡고 한 컷씩.^^

이제 시간이 한 시간 반 남짓 남았다. 아침도 컵라면으로 때워 배도 고프다. 친구는 가파도에서 구경했던 산방산과 송악산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며 마지막 코스를 정했다. 가파도에서 바라보며 모자 같다고 말한 산방산은 안개가 껴있었다. 산울림이 불렀던 "산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라는 노래가 절로 나오는 산, 송악산은 제법 관광객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었는지 온갖 편의점, 기념품가게, 특산물 가게, 심지어 스타벅스도 있다. 게다가 마라도까지 타고 갈 수 있는 관광유람선을 운영한다. 운진항이 정기적으로 가파도와 마라도를 가는 배를 운영한다면, 이곳은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만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제주 앞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중국집에 들러 한치짬뽕과 전복짜장 그리고 군만두를 시켜 점심식사를 했다. 1만 원짜리 식사였는데 가성비 갑이다. 두루두루 맛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운진항에 도착했다. 이제 진짜로 당분간 이별이다. 일주일 남짓 같이 지내다 보니 정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친구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진심이다.^^)

친구는 차를 몰아 제주공항 쪽으로, 나는 배를 타고 가파도 쪽으로! 배가 출렁이는데 왠지 허전한 마음이 밀려온다. (앞으로 혼자 잘 지낼 수 있겠지.) 15분 만에 배는 가파도에 도착하고, 나는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갈까 하다가 발전소 트럭을 발견한다. 그리고 망설이지도 않고 발전소 근처에서 지내는데 발전소까지만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트럭 운전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짐칸에 짐을 싣고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젊은 운전사는 어디에 사시냐고 묻는다.

"일산에서 왔습니다."

"아니, 오신 데 말고 가실 데."

나는 급 무안해져서 잽싸게 대답했다.

"느영나영 가게 골목에 삽니다."

젊은이는 씩 웃으며 집 앞까지 실어다 줬다. (경로사상이 살아있는 섬이로고!)


생면부지의 젊은 운전사에게 태워달라는 용기를 발휘한 내가 새삼 대견하여(?) 나는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짐을 지고 끌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마당으로 들어간다. 무사 귀환이다. 그런데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 너무도 조용해서 고양이들이 은근 걱정된다. 고양이 방에 가본다. 어랍쇼, 고양이들이 한 마리도 없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온다. 도대체 나 없는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고양이들은 어디로들 간 거야?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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