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13 : 대정오일시장

2823. 7. 16.

by 김경윤

16일, 오늘은 모슬포항 근처에 있는 대정동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3,8장이다. 어느 곳은 2,7장인데, 제주도는 1,6장이다. 지역과 지세에 따라 장날이 정해진다는데,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오늘배편을 확인했더니 모든 시간이 운행가능하다. 그렇다면 시간은 걱정할 필요 없다.

마당에 나가 고앙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똥을 치워준다. 이제 그냥 일상이다. 고양이들도 그러려니 한다.(이놈들도 나한테 익숙해졌나?) 샤워를 하고 아침은 간단히 떡라면을 먹는다. (믿지 않겠지만, 섬에 와서 처음 먹는 라면이다.) 문단속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선착장으로 간다. 오일장을 보면 분명 짐이 한가득일 것이다. (올 때 자전거에 싣고 올 계산으로 자전거를 매표소에 놔둔다.)

운진항에서 버스 타고 한 정거장 지나 내리면 모슬포항이고 그 옆에서 대정 오일장이 열린다. 빈 배낭을 메고 오일장으로 걸어간다. 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냉커피를 사서 빨며 걷는다.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날씨는 무척 덥고 후텁지근하다. 5분 정도 걸었더니 오일장 간판이 보인다.(간판에는 '대정오일시장'이라고 써있다. 자칫 착각하면 기름 파는 시장인 줄. 거리는 의외로 가깝네.)


드디어 쇼핑 시작!! 재래시장이라 기본적으로 가격이 싸지만 싸다고 이것저것 사다 보면 짐이 가득이다. 꼭 살 것만 사야지 다짐한다. 아내가 탄수화물 말고 채소를 많이 먹으라해서, 채소를 많이 사기로 한다. 오이, 풋고추, 대파, 방울토마토, 감자, 보리된장, 콩국을 샀다. 이미 배낭이 거의 다 찼다. 간식으로 옥수수 3개, 꼬마김밥 5개를 샀다. 일상용품으로 등긁개, 밥주걱, 채칼, 순간접착제를 샀다.(순간접착제는 냉장고 선반에 갈라진 틈을 붙이기 위해. 내가 갈라놓은 것은 아니지만 수선해 주기로 했다.) 아, 튀김집에 들러 고추튀김 한 개(1천 원)를 사서 맛봤다. 가격 대비 베리 굳이다.

재래시장에서 나와 홍마트(모슬포에서 제일 큰 마트)에 들러 김치, 계란 15개, 캔맥주 10개, 팔토시, 이쑤시개, 우유 2팩, 곰국(한 개 990원) 2 봉지를 샀다. 그리고 고민 끝에 고양이 모래(8,800원)를 샀다.(모래가 더럽고 적어서 배변을 다른 곳에 하는 것 같아, 이참에 갈아주려고 한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배낭 가득, 박스 가득, 봉지 가득, 게다가 고양이 모래까지. 남들이 보면 이사 가는 줄 알겠다. 이고, 지고, 들고, 메고, 더위에 허덕이다, 택시를 잡는다. 트렁크에 짐을 실어 놓고, 에어컨 빵빵한 택시 뒤칸에 앉았다.

"아이고, 시원하다. 아저씨 운진항 가파도 선착장까지 부탁합니다."

택시에서 내려 짐을 부리니 한결 살 것 같다. 시간은 넉넉하다. 표를 끊고, 편의점에 들러 냉커피 한 잔을 만들어 천천히 마신다. 느긋하게 전통시장을 구경하려던 본래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덧 전쟁 치르듯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쇼핑한 내 모습에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결국 과소비(?)한 건가? 꼭 필요한 것만 산 것 같은데 이렇게 짐이 많을 줄이야.

그래도 가파도에만 있다가 배 타고 나가 제주 본토 콧바람이라도 쐤으니 됐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어쨌든 구경 한 번 잘했다.

라고 쓰고 아름답게 끝내려 하였으나 가파도에서 자전거에 짐을 싣고 옮기다 균형을 잃는 바람에 포장 상자가 떨어져 우유 한 팩이 터지고, 계란 8알이 깨져 버렸다.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짐을 옮기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심란하다. 고양이는 밥 달라 울고, 생각해 보니 나도 간식을 사두고 점심을 굶었다. 고양이 밥 주고, 샤워하고, 깨진 계란물로 프라이를 만들어 시장에서 사놓은 꼬마김밥으로 점심 겸 저녁을 때운다.

"구경 한 번 잘했다."로 끝맺음 못하고, 이렇게 끝내야겠다. 여유롭게 시작했다가 허둥지둥 끝났지만 그래도 가파도에 결국은 도착했다. Come back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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