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18 : 고양이 탐구

2023. 7. 20.

by 김경윤

내가 온 2주간 동안 고양이들이 무척 많이 먹고 무척 많이 싸고, 부쩍 자랐다. 오늘 아침 고양이 똥을 치우다, 사람똥이 아닌가 의심했다. 간밤에 길냥이들이 들어와서 식량을 축내고 똥을 싸질렀나? (배변 모래를 새로 갈아줬는데, 똥을 모래에 숨기지도 않았다.) 같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서 먹는 거라도 듬뿍 먹이려고 했더니, 그게 실수였나? 똥을 한 무더기 치우며 은근 걱정이 된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 걸어 만물박사(?)인 큰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운동은 안 시키고 먹이기만 하면 뚱냥이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면서, 이왕 집사역할을 하려면 인터넷에서 관련 동영상을 검색하여 참고하라는 MZ세대다운 팁을 주었다. 인터넷은 뭐든지 알고 있다는 듯.

그러고 보니 내가 고양이를 어릴 적 강아지를 다루듯 했구나. 급반성 모드로 전환하여 유튜브에 들어가 초보 고양이 집사가 해야 할 일을 검색하여 조회수가 많고 길이도 적당한 동영상 몇 편을 보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아, 나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에서 보여주는 고양이 집사가 해야 할 일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1. 밥은 하루 두 번 건식과 습식을 골고루 주되 운동량과 체형을 고려하여 적당량 주어야지 무턱대고 많이 주면 안 된다. 편식은 절대 안 되니 주식과 간식을 영양을 고려하여 주라.

2. 배변은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 치워주고, 청결을 위해 보름 단위로 한 번 모래 전체를 교환해 주어야 한다.(배변 용기는 고양이 숫자보다 많아야 한다.)

3. 적어도 하루 30분은 고양이 놀이기구로 고양이랑 놀아 주라. 고양이가 충분히 놀 수 있는 놀이기구를 매일 다르게 마련하여 고양이들이 놀이에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4. 고양이 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필요한 접종을 꼭 하라.

5. 고양이 털이 날리지 않도록 빗질을 하루에 한 번은 시키라. 목욕도 자주 시키라.

6. 고양이들은 장소 지향적 동물이니 고양이들이 이동하면서 놀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마련해 주라.

7. 어차피 고양이를 키우면 냄새가 나니, 불만을 품지 말고 적절한 조치(목욕, 빨래, 방향제 등등)를 취하라.

8. 고양이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고양이 잘못이 아니니, 알아서 고양이 피해에 대비하라. (예를 들면 소파나 가구를 구입할 때 스크래치가 잘 나지 않는 것을 구입하는 등등)

9. 고양이를 키우면 장기간의 외출은 금물이니, 염두에 두라.

10. 이래도 고양이를 키울래?


아니, 절대로!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개를 키울래,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개를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매일 산책을 시키고, 밥 먹이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미용까지 시키려면 고양이나 개나 도긴개긴이다. 나는 속으로, 이 정도 정성을 아내나 내 자식들에게 보였다면, 분명 나는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비용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특히 반려묘 식구들은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이다. 게다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는 거의 사라지는 대신 길냥이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가파도를 돌며 길냥이나 집냥이를 찍고 있는데 정말 많다. 그에 반해 개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가파도는 개는 거의 안 키우나?)

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집냥이인지 길냥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자, 어쩔 것인가? 일단 내가 계속 키울 고양이가 아니니, 세 가지만 하기로 했다.

1) 밥 두 번 적당량 밥그릇은 따로따로, 물그릇도 매일 새 물로 깨끗하게!

2) 배변을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배변모래는 다시 사서 전체를 한 번 갈아주마.)

3) 하루 30분 놀이기구를 구입하여 새끼들과 놀아주기. (이번 주말에 이를 위해 다시 한번 본토에 상륙하기.)


아, 그래 내가 떠나기 전에 너희들의 쿠션이나 집들을 한 번 깨끗하게 세탁해 줄게. 이 정도로 우리 타협하자. 나는 임시 집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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