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19 : 가파도의 밤은 낮보다 길다

2823. 7. 20. 밤

by 김경윤

가파도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크게 두 종류다. 대개는 당일치기로 한두 시간 섬 주변을 구경하다 다시 제주도로 돌아간다. 이분들 덕분에 가파도에 즐비한 카페며 식당이 먹고살기는 한다. 둘째는 소수긴 하지만 하루나 이틀 민박하면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낚시꾼)들이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분들이라 장비도 좋고 경력도 화려하다. 전국 안 돌아다녀본 곳이 없는 사람도 간혹 만난다. 민물낚시를 하다가 바디낚시로 갈아탄 분도 많다.

하루 두 번 물이 들어오는 때를 맞춰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잘 잡히는 장소를 선점하여 낚시하려고 경쟁이다. 좋은 장소에 어느 정도 낚시꾼이 있으면 그곳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미리 온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이 낚시꾼들의 예의이다. 시간상으로는 낮보다 밤늦게 만조 때를 맞춰 바닷가 바위에 올라 불 반짝이는 찌를 던지는 낚시꾼들이 많다. 이들은 한 번 자리 잡으면 적어도 서너 시간은 꼼짝 안 하고 낚시를 한다. 밑밥을 채우고 미끼를 낚싯바늘에 끼우고 바다를 향해 낚싯줄을 던지는 반복적인 모습은 때로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7,8월 가파도는 벵에돔이 제철이다. 벵에돔은 횟감 중에서도 가장 비싼 고기라 킬로당 1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낚시꾼들이 입맛을 다실 만하다. 해안가에서 무늬오징어를 잡는 낚시꾼도 있다. 무늬오징어 역시 오징어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놈이라 킬로당 3,4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벵에돔과 무늬오징어

그러니까 가파도는 낚시꾼이나 어부들에게 썩 훌륭한 천혜의 장소인 셈이다. 나는 낚시를 전혀 해본 적이 없어, 고기들을 어떻게 잡는지 TV나 동영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가파도에 있으면서 직접 낚시하는 현장에 동행하는 경험을 했다. 이 또한 평생 처음 한 일.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내가 고양이 집사로 잠시 머물고 있는 집 골목어귀에는 여러 가지 횟감을 식사로 파는 가게가 하나 있다. <느영나영>(유추컨대 너랑나랑의 제주도 방언인 듯하다.)이라는 상호를 가진 이 가게 주인이 낚시광이다. 하루에도 한 두 차례는 꼭 낚시를 다닌다. 산책을 나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데, 내가 지나가는 말로 요즘 벵에돔 낚시철이라는데 벵에돔을 잡으신 적이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전날 6마리나 잡았다며 자랑한다. 그래서 맛 좀 보자며 간청했더니, 저녁 7시쯤 오란다. (아이고, 형님! 제가 드디어 그 귀하디 귀한 벵에돔을 먹게 됩니다.) 뛸 듯이 기뻐 크게 인사하고 저녁시간만 기다렸다.


저녁때가 되어 밥도 굶고 가게에 도착했더니 형님(언제부턴가 호칭이 이렇게 바뀌었다.)이 탕도 끓이고, 껍질은 토치로 살짝 불맛을 낸 벵에돔 한 접시를 내놓으신다. 거기에 생미역과 직접 텃밭에서 탄 깻잎과 고추까지 한 상이다.

귀한 회가 넉넉하여 매표소 직원도 부르고 지나가는 모자가게 아주머니도 불러 한 쌈씩 드리고 소주도 나눴다. 후에 매운탕과 밥은 자연스러운 절차! 형님과 나는 사이좋게 소주 각 일 병씩!

시간은 어느덧 저녁 8시 반, 가게 형님은 시계를 계속 본다. 왜 그러시냐 물었더니 날씨도 좋고 물 때가 와서 벵에돔 낚시 하기에 딱 좋단다. 그래서 술상을 물리고 나도 따라가서 구경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술이 좀 들어가서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같이 가잖다.(만세! 드디어 멀찌감치서 구경만 하다 지척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형님은 모기한테 뜯기지 않으려면 긴 옷으로 갈아입고 오란다. 잽싸게 갈아입고 돌아왔더니, 주섬주섬 이것저것을 챙기시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바닷가 바위에 도착하니 9시. 그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동행(?) 낚시를 하게 되었다.

저 멀리 수평선에 보이는 불빛은 갈치잡이 배들이다. 낮에 배를 몰고 나가 밤새 낚고 새벽에 돌아온다. 다들 부지런히 산다.

결과는 어땠을까? 두 번에 손맛을 봤으나, 결국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런 날도 흔히 있단다.(왜 없겠는가? 60 평생 살아오면서 공친날을 나도 수없이 겪었다.)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아쉽거나 섭섭하지 않다. 형님과 낚싯대를 던지고 나눈 인생이야기로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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