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0 : 냥이들의 이름 내력
2023. 7.22.
냥이들과 같이 지낸 지 20일째다.(그러니까 앞으로 집사생활이 10일 남았다는 얘기다.) 제사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신경 쓰고 가파도에 왔는데, 친구는 일주일 동안만 같이 지내고 고양시로 돌아가 버렸다. 친구랑 같이 지낼 때는 고양이들에 대해 투덜거리기만 했을 뿐, 설마 고양이를 돌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가 덜컥 고양으로 돌아가자, 대략 난감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여튼 일단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고양이의 내력을 말할 것 같으면;
우선 고양이들의 원주인도 고양이를 어렸을 때부터 키운 것이 아니라 새끼를 밴 길냥이가 집을 찾아 들어온 것을 내쫓지 못하고 키운 것이라는 사실을 동네사람에게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집주인은 측은지심은 넘쳤으나 시비지심(?)이 모자라 고양이들이 자율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시킨 듯했다. 야생에 가까운 고양이를 맡기고 가면서 별로 인수인계도 없이 넘긴 것이다.
그러니 친구도 처음에 대략 난감했을 것이다. 친구는 고양이의 거주지를 본채에서 별채로 이동시키고, 본채에 있는 고양이 흔적을 지우려 꽤 노력했지만 내가 갔을 때에도 고양이 냄새 천지였다. 어쨌든 고양이가 살던 본채의 방을 아예 폐쇄시키고 나서야 냄새가 가라앉았다.(지금도 본채의 안방과 건넌방(원래 고양이방)은 폐쇄된 상태다.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나조차 들어가지 않고 하루 한 번 환기만 시키고 있다.) 나는 방은 얼씬거리지도 않고 거실과 부엌에서 취침을 포함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다.
이집을 소개받아 오게 된 친구도 고양이집사라 자처했으나 고양이에 대해서는 거의 생초보 수준이었다. (오죽했으면 고양이의 암수 구분을 못하겠는가.) 나 역시 개과라 고양이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었고, 결혼하고 나서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으니, 무식하긴 친구와 용호상박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원주인이 고양이들을 뭐라 불렀는지 들은 바 없고, 친구도 고양이를 이름 부른 적이 없었으니, 나 홀로 남겨졌을 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에 불과했다. 나도 얼마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나 좋으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나중에 고양이들이 더 헛갈릴 것 같아 작명을 저어했었다.
그래도 명색이 임시 고양이 집사인데, 고양이를 부르지도 못한다면 그 또한 닭새끼 기르는 거와 진배없을 것 같아, 그냥 나 스스로 그들을 관찰하면서 재미 삼아 이름을 짓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김춘수 조(調)로 이어 가자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엔 그는 그저 한 마리 고양이에 불과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먹자, 비비자. 놀자, 달리자, 싸우자, 숨자가 되었다.
자, 그럼 먹자부터. 먹자는 고양이 집안의 식량 담당인 노란 점박이 어미 고양이다.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특식이 먹고 싶을 때 나에게 달려와 큰 소리로 항의하거나, 창문을 두드리며 나의 일상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물론 먹자가 제일 많이 먹기도 하고 먹는 걸 밝히기도 한다.
다음으로 비비자는 검은색 점무늬를 가진, 꼬리가 잘린 어미 고양이다. 꼬리가 잘려서 그런지 뛸 때 약간 균형을 잃기도 한다. 꼬리가 잘린 사연은 알 도리가 없다.(나와 친구는 먹자와 비비자가 암수 부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자세히 관찰하니 둘 다 어미였다. 그러니까 이 둘은 부부가 아니라 미혼모(?) 동반자였다. 혹시 이 둘은 어미가 같은 자매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서로를 저렇게 극진하게 핥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비비자의 역할은 나만 보면 주위를 돌며 몸을 비벼대는 것이다. (애정결핍인가?) 그리고 내가 만지기라도 할 냥이면 그렇게 가르랑 댄다.(좋다는 거겠지?) 급기야는 바람도 시원한 날 빤스 바람으로 거실에서 살짝 낮잠이 들었을 때, 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같이 누워 자기도 했다.
이 두 어미들은 적극적으로 나에게 달려와 뭔가를 요구하지만, 네 마리 새끼 고양이들은 아직도 나만 보면 피하고 숨는다. (내가 놀이기구로 놀아주면 분명 달라질 거라고 확신한다. 놀아줘, 말어?) 그래서 새끼 고양이들은 조금 거리를 두고 관찰했다.
먼저 숨자는 노란 새끼 고양이다. 먹자의 자식이 분명하다. 그렇게 둘이 자주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새끼들끼리 있을 때나 내가 접근하면 제일 먼저 숨어서 내가 숨자라고 작명했다. 겉으로는 샤이해 보이다가 성질이 나면 무섭게 돌변하기도 한다.
놀자는 이마에는 호랑이 줄무늬에 팔에는 줄무늬가 없는 비비자의 자식이다. 가장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강한 새끼 고양이다. (얼마 전 동영상으로 꽃과 노는 것을 공유했는데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았다.)
사진 속에 맨 오른쪽이 놀자다. 오늘은 표범처럼 저 꽃가지 위를 탔는데 위낙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사진에 담지 못했다.달리자는 줄무늬 없이 검은 무늬만 있는 새끼 고양이다. 내가 본 모든 집안 고양이 중에서 가장 많이 달린다. 심지어는 빨리 달리는 것 같기도 한데, 경주를 시켜보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다. (쉬고 자는 곳도 가장 높은 곳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싸우자는 가장 장난이 심한 새끼 고양이로 팔에 완장처럼 줄무늬가 있다. (장난이 심하지만 귀여움도 심하다.^^)
이 모든 이름은 내가 고양이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속으로 그들을 부르면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먹자와 비비자 외에는 소리 내어 부른 적이 없으니, 새끼들은 내가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금시초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처음에는 낯선 짐승 대하듯 화들짝 놀라 숨기 바빴는데, 요즘은 소 닭 보듯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진일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정도가 딱 좋다. 우리 너무 친해지지 말자. 헤어질 때, 너무 힘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