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3 : 마라도 나비효과 3
2023. 7. 24.
아침이 밝았다. 호텔에서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하고 오랜만에 에어컨을 켜고 쾌적하게 자고 나니 온몸이 개운하다. 오전 7시 반. 고개를 돌려 옆 침대를 보니, 침대가 비어있다. 매표소 직원은 아침 일찍 철거보수 공사 현장을 살피러 간 모양이다. 전화를 걸었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푹 주무시게 조용히 나왔습니다. 푹 쉬시고 체크 아웃한 후에 제가 보내드린 장소로 12시쯤 오세요. 점심 식사를 같이 하시죠? 식사 후에는 맛난 커피도 드시고요."
시계를 보니 4시간이나 남아있다. 샤워를 하고 아침 산책을 하러 이호테우 해안가로 내려간다. 간밤의 불야성과는 달리 퍽이나 고요하고 아담하고 잘 정리된 해수욕장이다. 이렇게 좋은 곳이 제주공항 주변에 있었다니. (강추한다.)
해변을 따라 맨발로 산책하는 분들도 있고, 나뭇길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멀리 붉은 말과 하얀 말 모양의 등대가 보인다. 그리고 해변 한편에 돌로 둘러쳐진 확(밀물 때 몰려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못 나오도록 가두는 장치)이 두 개나 있다. 그곳을 거쳐 등대까지 가보기로 한다. 갈 때는 해안가로, 올 때는 나뭇길 산책로로.
꽤 오래 걸었나 보다. 시간을 보니 2시간 반이나 지났다. 중간에 편의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일기에 정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돌아가 호텔 체크 아웃할 시간이다. 11시까지 30분 정도 남아 샤워를 한 번 더 했다. 체크 아웃하고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택시를 불러 타고 갈까, 걸어서 갈까? 점심약속 장소까지 내비를 켜보니 2.8킬로. 천천히 걸으면 약속시간에 맞출 수 있다. 이제 걷는 데는 신물이 났는데도, 걷기를 선택한다. 천천히 걷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매표소 직원이다. 공사가 일찍 끝나 벌써 도착했다고, 음식 시켜놓을 테니 택시 타고 오란다. (그러고 보니 아침도 안 먹었구나.) 맞은편에서 오는 빈 택시를 돌려 잡아 약속장소를 알려준다. 택시기사가 금세 알아듣는다. 꽤나 유명한 음식점인가 보다.
택시 탄 지 5분도 안 돼 도착했다. 도두항서길에 있는 몰래물 밥상이다. 제주도 정식을 파는데 활우럭조림과 은갈치조림이 대표 메뉴다. 매표소 직원은 가족들이 이 근처에 오면 무조건 들러 먹는 인생맛집이라며 활우럭조림을 시킨다. 상차림을 보니 가히 진수성찬이고 맛을 보니 천하일미(!)로다.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제주도 와서 먹었던 수많은 음식 중 무조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나중에 제주도에 들릴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들러서 식사하라고, 후회 없을 거라고, 추천한 사람 복 받으라고 말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혹시 몰라 명함도 올려준다.
아침도 굶었기에 서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으며 고기 네 종류(생선 3종류, 돼지 1종류)를 뜯어먹고, 발라 먹고, 찍어 먹고 쌈에 싸 먹고, 게장은 쪽쪽 빨아먹고, 조림 국물에 비벼 먹고, 우거지는 건져 먹고, 조림 무는 잘라먹고. 묵사발에 부어 먹고, 먹고 먹어 배 터질 지경으로 먹어도 젓가락을 놓지 못한다.
이제 그만.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서는데 마지막으로 딱 한 군데 더 들릴 데가 있단다. 걸어서 3분. 제주도에서 제일 맛있고, 멋지고, 진성성 있어 놀랄 만한 찻집이란다. 더 먹을 수 있을까? 해안가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가파도 매표소 같이 생긴 건물이 보인다. 저기란다. (멀리서 보니까 별론데?) 이름이 <카페, 진정성>이다.
멀리서 볼 때는 밋밋해보였는데 가까이 갈수록 매력적인 건축물임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드립커피와 밀크티는 워낙 명물이어서 젊은이들의 핫스폿이란다.(이런 정보는 제주도 원주민에게는 결코 얻을 수 없다. 오직 젊은 제주도 이주민만이 감지하는 정보다.^^) 나는 한 번도 시켜본 적이 없는 밀크티를 시켜봤다. 홍차가루에 밀크티를 넣고 우려내어 거름망에 걸러 먹는 이 차는 맛도 향도 좋다, 오늘 아주 대박이다. 제주도 맛집 천국 투어다.
더 이상 즐거움을 누렸다가는 쾌락과다로 지옥행일 듯싶어 오늘의 맛집 투어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이제 가장 큰 즐거움만이 남았다. 집으로 무사 귀환하기. 제주도에 있는 꿈틀작은도서관 앞에서 151번 급행버스에 올라탄다. 1시간 후면 운진항이고, 3시 배를 타면 3시 15분에 가파도로 돌아간다, 직원은 피곤했는지 버스에서 골아떨어졌다. 나는 밀린 일기를 쓰며 운진항으로 간다.
운진항에서 내리니 비가 내린다. 어제 택배보관소에 맡겨둔 배낭을 찾아 메고 가파도행 배에 오른다. 배가 떠난다. 배 옆으로 어선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김윤아가 부른 <고잉 홈>을 찾아 귀섬길(?) 노래로 삼는다. 드디어 가파도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