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4 : 냉장고 파먹기

2023. 7. 25.

by 김경윤

1.

가파도로 무사히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갔더니 고양이들이 떼로 반긴다.(드디어 얘들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급히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똥을 치우고, 물을 갈아준다. 얘들에게 줄 고양이 장난감도 찾아, 물고기 장난감을 던져 줬더니 물고 던지고 난리가 아니다. 고양이 낚시놀이기구는 새끼를 위해서 샀는데 어미들이 더 난리다.

2.

어젯밤에 가파도 일몰시간 7시 40분에 맞춰 지는 해를 사진에 담으려고 자전거를 달리다가 운전 부주의로 새끼발가락이 살짝 다쳤다. 살갗이 까져서 피가 조금 흘렀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일몰을 사진에 담았다. (퀄리티는 장담 못하지만.)

3.

어제 응급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아침에 보건소에 들러 상처를 보여주고 치료를 받았다. 괜히 다 나은 듯 든든하다. 보건소에 들른 김에 젊은 소장에게 슬쩍 말을 섞었다.

"가파도 보건소로 파견 나오셨는데 휴가 나온 기분이세요? 유배 온 기분이세요?"

"순환근무로 1년씩 돌아가면서 하는 거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후자?^^"


당연한 걸 왜 묻냐는 것 같았다. 소장이 되묻는다.

"이 동네분은 아니신데, 낚시 오셨어요?"

"아니요. 가파도에 한 달 살이 왔어요."

"한 달씩이나요? 뭐 하시는데... "

"고양이 돌보면서 글 씁시다. 작가거든요."

"아~~."


작가라는 말에 소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백수라도 '작가'라고 말하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나도 편승한다. 나오면서 응급치료약을 받아 나온다.

3.

앞으로 가파도 생활은 일주일이 남았다. 슬슬 고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오늘부터 가지고 있는 소모품들은 잘 계산하여 써야 한다. 새로운 걸 사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걸 잘 쓰자.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더 가져야 할 시간이 있다면, 가진 것을 잘 써야 할 때가 있다. 나이 60살. 나는 잘 써야 할 때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무엇이 남았는지 점검한다. 오늘부터 냉장고 파먹기를 하기로 한다. 야채를 우선순위 1순위로 올린다.

아침은 신김치로 콩나물국을 해 먹었다. 이제 풋고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보리된장에 쪽파를 썰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점심은 부추와 당근, 양파로 부추전을 만들었다. 주변에 나눠주려고 많이 만들었다.

앞으로 카레, 된장찌개, 김밥, 돼지김치찌개, 스파게티, 양배추 쌈, 감자조림을 해 먹을 수 있다. 아, 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 잔 할 수 있겠구나. 커피는 충분하고 차는 거의 다 먹었다.

이 정도면 일요일까지 넉넉하다. 됐다.


4.

화요일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3년 넘게 화요일마다 젬베를 쳤다. 심지어 2급 자격증도 땄다. 젬베를 가져오지 않아 음악을 틀어놓고 탁자를 두드리며 갈증을 조금 해소할 뿐이다. 8월이 되면 젬베를 마음껏 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벌써 뛴다.

5.

오늘은 날씨가 좋다. 변덕을 부리기 전에 섬 한 바퀴 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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