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5 : 가파도 해안 여행
2023. 7. 26.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 하늘은 쾌청한데, 온도가 높아 집안이 찜통이다. 모기(뿐만 아니라 고양이들)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잘 수는 없고, 에어컨을 켜놓고 자자니 전기료가 많이 나올 것 같아, 그냥 문 꼭 닫고 자다가 이런 낭패를 당한다.
오늘은 모슬포항 대정 오일시장이 열리고, 바람도 잔잔하여 마라도 가기에도 딱이지만, 시장은 살 것이 없고, 가파도는 무더위라 가기가 꺼려진다.(게다가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다쳐 걷기도 살짝 불편하다.) 이런 날은 조신하게 집에서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그늘에 몸을 피해 가만히 있는 것이 최고다. (노인들은 이런 날씨가 나다니면 더위를 잡수신다. 내가 노인이란 말은 아니다.)
그래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하니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를 빠르게 한 바퀴 돌기로 한다. 도는 김에 포스트마다 사진을 찍어 가파도 해안가를 소개도 해볼까? 사진과 함께 떠나는 가파도 해안가 여행이라 하자.
운진항에서 떠나는 가파도 여객선을 타고 내리면 가파도 매표소가 보인다. 더우면 그곳에 들어가 잠시 몸을 식혀도 괜찮다. 매표소 뒤에는 마을회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1인승은 5천 원, 2인승은 1만 원에 빌려준다. 그냥 걸어도 된다. 나라면 체류시간이 별로 없기에 자전거 대여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 것을 권한다. 자전거 탈 때 길의 경사를 고려한 것이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상동마을 할망당(매부리당)이다. 일 년에 한 번 집안과 객지로 나간 식구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니, 여행의 안녕을 빌어보자. 좌측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어린이 수영장이 있다. 엄청 큰 미끄럼틀이 있어 눈에 띌 것이다. 바닷물의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위가 달라지는 수영장이다.
내가 어렸다면 매일 빤스만 입고 들어가 놀았을 것만 같은 무료수영장
가파도에는 상동과 하동 두 군데 이렇게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다.조금만 더 가다 보면 길에 표시가 그려진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섬의 중앙(남북)을 가로지르는 청보리밭과 벽화길이고,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해안가 길이다. 오늘은 해안가 길로 고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름바위(큰 왕돌)다. 기념사진 찍겠다고 여기 올라가면 안 된다. 안 좋은 일(태풍이나 강풍 따위로 생기는 재난)이 생기다는 속설이 있다.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바다를 향해 지어진 전망대가 보인다. 여기가 가파도에서 일몰(보통 저녁 7시 30분~40분)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1박을 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은 가파도의 일출도 일몰도 볼 수 없다. 가파도의 배편은 일출 이후에 시작하여 일몰 이전에 끝나기 때문이다.)
아쉬워하는 분을 위해 어제저녁 7시 30분부터 40분 사이에 내가 찍은 일몰 사진을 몇 장 공개한다.
사진을 보고 아쉬움을 달랬다면, 다시 해안을 따라가보자. 가파도에서 가장 해양쓰레기가 많은 곳이 여러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바로 고양이(고냉이)돌 근처의 해안가다. 가파도 주민들이 정말 자주 해안가를 청소하지만 파도에 쓸려 밀려오는 쓰레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특히 고양이돌 근처에 가장 많이 쌓인다.
그나마 물에 뜨는 것이라 파도가 여기까지 가져와 부리고 갔기에 망정이지 저 쓰레기가 고스란히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해안가 쓰레기를 보면 주민을 탓하지 말고 함부로 쓰레기를 버렸던 우리의 일상(양심)을 부끄러워 하자.
우리는 지금 상동에서 하동으로 가는 해안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섬의 반을 돈 것이다. 힘을 내자. 가다 보면 왼쪽에 공공화장실이 보이고, 그 앞에 식수대도 보인다. 여기가 하동에 있는 유일한 공공화장실이다. (상동에는 매표소에 공공화장실이 딸려 있다. 관광객들의 후기를 보니 공공화장실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많다. 동의한다. 적어도 2~3개 정도는 더 있어야 할 듯하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봤다면 이제 하동으로 가보자. 하동에는 선착장과 마을회관, 어촌계, 여행객을 위한 자율쉼터<카페 등대>가 있다.(그런데 쉼터는 열려있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관리에 따른 비용문제일 듯하다.)
앞에 보이는 가게를 끼고 왼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식사나 간식을 해결할 수 있는 가게들과 기념품 가게들이 많다. 계속 가면 섬을 가로 지르는 길이다. 이제 하동 선착장에서 상동 쪽으로 가는 해안길이다. 먼저 눈에 띄는 곳은 돈물깍과 불턱이다. 돈물은 담수를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담수가 솟아나는 곳이고, 가파도 아낙들이 이곳에서 식수를 기른 듯 하다. (몸집에 비해 커다랗게 과장된 여인의 손을 보라.)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추운 날은 불을 피워 몸을 녹이던 곳이다. (해녀의 애환이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불턱 뒤로 보이는 곳이 하동 쓰레기 분리수거장이다.
자, 계속 가자. 처음 보이는 장소는 이태봉 씨가 조성한 자연 치유공간 태봉왓이다. 시간이 되면 돌겠지만, 우선 해안가를 따라간다. 멀리 왼쪽 언덕에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건물이 보인다. 조금만 더 가면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다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일출을 구경할 수 있는 핫스폿이다.
물론 낮에 잠시 자전거로 도는 관광객은 일출을 볼 수 없다. 그 영광은 주민이나 일박 이상을 하는 민박인들에게 있다. 살짝 위로의 말을 전하자면, 가파도는 날씨가 변덕이 심하고 구름이 많아 깨끗한 일출을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나도 깨끗한 일출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찍은 사진으로 살짝 맛보기를 하자.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언덕은 내려서 밀고 올라가자. 작은 언덕 끝에 제단(짓단)과 드라마 <우리들의 부르스> 촬영지와 내가 최애하는 쉼터가 있다. 나는 이곳에 앉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
만약에 자전거를 탔다면 앞으로는 천국길이다. 아래로 경사로가 뻗기 때문에. 그래도 놓치지 알아야 할 것은 해안가 오른쪽에 쌓아놓은 제주도 전통돌담이다. (전쟁시에는 성벽의 역할을 하기도 했단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전통돌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쌓았다.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치는 돌담은 바람을 닮은 것인지 파도를 닮은 것인지 참 아름답다.
자, 이제 한 바퀴를 거의 다 돌았다. 매표소로 돌아가기 전에 어멍 아방 돌을 만날 것이다. 엄마 아빠처럼 나란히 서 있는 돌인데 이 돌에도 보름바위 처럼 올라가면 안 된다. 그냥 구경만 하자.
자, 다 왔다. 눈앞에 매표소가 보일 것이다. 시간이 좀 남았다면 매표소에 들어가 쉬거나 맞은편에 있는 <가파도엔>이라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나 가파도 특산 보리미숫가루로 만든 음료를 드셔 보라. 맛이 그만이다. (그 맛때문에 매표소 직원과 내 단골집이다.)
자, 다시 돌아왔다, 걸으면 한 시간 남짓, 자전거로 돌면 30분 남짓 거리다.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 만한 섬이 가파도다. 집도 백여 채밖에 안 되고, 주민도 2백여 명 살고 있다. 대도시 아파트 한 동보다 적은 인원이다.
볼만한 기념물도 역사 유적지도 명소도 없다. 그저 바람맞고 비 맞고 눈 맞으며 농사짓고 낚시하며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다. 특산물이라고는 청보리밖에 없어 그것을 관광상품으로 청보리 축제(3~5월)를 열고 있다. 아름다운 풍광만이 자랑거리다. 그러니 이곳에 오셔서 특별한 것을 얻어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그저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무쌍을 감상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