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6 : 선물(膳物)

2023. 7. 26.

by 김경윤

제주도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이 최고다. 오후까지 엄청 덥지만 쾌창한 날이 계속되다가, 저녁 무렵이 되자 천둥이 울리며 소나기가 쏟아진다. 널어놓은 빨래를 서둘러 거둬들이고 창문을 닫는다.


오늘도 냉장고 파먹기를 계속한다. 가장 많이 남은 부식이 꼬마만두(물만두용)다. 물만두로 만들지 않고 군만두로 만들기로 한다. 한 100개쯤 튀겨서 매표소 직원 가족(부부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에게 반을 나눠주고, 나머지 반으로 직원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다.


직원이 근무 끝나고 오기 전에 50개 정도를 미리 구워 두기로 한다. 오면 미리 준비한 만두를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 돌아오는 사이에 50개를 더 굽는다. 굽는 시간이 모자라면 직원에게는 야채 모닝빵이나 쌀로 만든 식빵에 잼을 발라 대접하면 된다. 그리고 어제 미리 내려 냉장고에 넣어둔 냉커피도 있다.

직원은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할 일이 남아 늦었다면서 쌀봉지와 팩우유 3개를 건넨다. (쌀이 거의 떨어져 조금만 달라고 미리 부탁했었다.) 나는 미리 만들어둔 군만두를 집에 가져다주라고 말했다. 그 사이에 또 만들겠다고. (며칠 전에 매표소 직원집과 내가 머무는 집은 지척지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직원이 다녀오는 사이 급히 만두를 굽고, 방울토마토를 씻고, 커피를 꺼낸다. 조촐한 저녁상이 마련됐다.

직원의 아이가 만들었다며 크림 콘치글리에 파스타를 가져왔다. 직원과 조촐한 저녁식사와 담소가 끝나고 나는 냉동 삼겹살과 냉동 동그랑땡, 그리고 일회용 포장 김을 선물한다. 내가 먹을 수도 있지만 직원네 아이들이 더 맛있게 먹을 것 같다. 직원은 나에게 쌀과 우유를 선물하고, 나는 냉장음식과 포장음식을 선물했다.

선물은 혼자 살지 않겠다는 신호이고, 호의로 상대방을 대하겠다는 태도이며, 좋은 것은 나누자는 의지이다. 부족사회에서는 이런 선물의 문화로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안녕을 기원했다. 가파도에서의 나의 삶도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로 풍족했고, 나 또한 나누며 살려고 노력했다. 냉장고는 즐겁게 가벼워졌고, 삶은 기쁘게 변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바깥은 천둥과 번개로 변화무쌍한 하늘이다. 하지만 밖에서는 천둥 번개가 쳐도 내 마음은 쾌청하고 평안하다, 선물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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