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27 : 다시, 마라도
2023. 7. 27.
간밤에 천둥 번개가 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멀쩡하다. 고양이들 밥 주고, 나도 간단히 보리미숫가루에 우유를 타서 먹는다. 아침 산책을 나선다. 어제는 해안가를 찍었으니 오늘은 섬 중앙에서 동서남북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가파도 육지 여행을 소개하기 위한 사진자료가 다 모였다.) 시계를 보니 8시 반. 지난번에 가보려다 실패한 마라도에 가볼 수 있는 안정적 시간이다. 갈까? 가자! 매표소에 가서 운진항으로 가는 9시 20분 배표를 끊는다. 가는 거다, 마라도!
운진항에 도착. 다시 매표소에 들러 마라도행 왕복표를 예매한다. 운진항에서 10시 반 출발, 마라도에서 13시 출발. 2시간 동안 마라도에 머무를 수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점심 먹을 시간을 아껴 천천히 충분히 돌자.
드디어 마라도행 배가 떠난다. 어쨌든 마라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설레는 맘으로 2층에 올라 실외로 나가 바다와 바람을 만끽한다. 배가 가파도를 왼편으로 끼고 계속 전진한다. 나는 마라도행 배 위에서 가파도를 찍어둔다. 25분쯤 지났을까? 마라도가 눈앞에 들어온다. 절벽을 끼고 서 있는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다.
저 멀리 가파도가 보인다.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는 섬.
드디어 마라도에 다가간다.마라도에 내리니 선착장에서 50 계단쯤 걸어 올라야 섬의 평지에 다다를 수 있다. 마라도는 오로지 도보로만 여행할 수 있다. 평지에 오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4시간 편의점과 짜장면집. (마라도에는 정말 짜장면집이 많다. TV광고가 만든 과잉상품이다. 게다가 24시간 편의점이 2개나 있다. 가파도는 하나도 없는데.ㅠㅠ) 심지어는 전기차로 실어 나르는 호객행위도 한다.
나는 식당가를 벗어나 해안가를 걷기 시작한다. 나무 담장 안쪽으로 걷는데, 정체불명의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이건 뭐지?) 그냥 지나친다.
조금 더 걸으니 기원정사라는 절이다.(참고로 마라도에는 절과 성당과 교회가 다 있다. 최남단이라는 상징적인 지리적 조건이 종교시설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 입구에 해수관음상이 있다. (항구도시에 위치한 절에는 해수관음상이 있는 듯. 바닷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는 보살이다.) 절을 둘러보고 조용히 사진을 찍다가 스님을 만났다. 나는 합장하고 인사한다. 스님이 다가온다. (그러려고 인사드린 건 아닌데.^^)
"마라도에는 종교시설이 많네요. 절, 성당, 교회."
"네. 그렇지만 다들 갈등 없이 사이좋게 지냅니다.^^"
"불자들은 많나요?"
"다들 생업에 바쁘셔서...."
즉답을 피하시는 것을 보면, 신도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다음번에 오면 절에서 1박 하며 지내고 싶네요."
"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스님께 합장하고 절에서 나온다.
절에서 나와 다시 해안가를 따라 걷는다. 도보로는 네모 반듯 한 돌로 포장되어 있어, 땅을 단단히 밟는 느낌이다. 걸음에 힘을 주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물 빠짐과 미끄럼 방지? 폭신한 잔디 위를 걸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신작로 선착장에 도달했다. 여객선보다는 바지선이 들어오기 적합한 구조다. 주변 암석 위로 파도가 힘차게 친다. 한동안 넋을 잃고 파도를 구경한다.
백년초 자생지를 지나 공공화장실에 도착하여 일을 본다. (마라도도 가파도처럼 공공화장실이 두 곳이다. 지리덕 선착장과 국토최남단 기념비를 가기 전에. 규모는 비슷하다.) 마라도 해양경찰서 옆에는 여행객 쉼터가 있고 바로 앞에 국토최남단 기념비가 있다. 내가 들어간 여행사진을 찍지 않는데, 여기에서는 진짜 기념으로 옆 여행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자, 이제 마라도 성당으로 가자. (오늘의 소박한 목표가 3개의 종교시설을 방문하는 것이다.) 5분 정도 경사진 곳을 오르니 옹기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은 것 같은 성당이 보인다. 이번에는 성녀 마리아 님께 인사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 성경필사 릴레이가 있어, 나도 한 구절 받아 쓴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과 인공 등으로 만든 빛이 은은하게 어우러져 성당 분위기를 조성한다.(작지만 정성 들여 만든 성소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눈을 감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다.
성당 옆에 있는 큰 건물이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등대다. 가파도 등대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심지어 전 세계의 등대 미니어처들이 동상처럼 등대 앞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내가 가야 할 곳은 마지막 종교시설 교회다. 지도를 보니 교회로 가려면 해안가로를 따라가면 안 된다. 담수장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해안가를 4분의 1 정도 보지 못하게 되지만 과감하게 꺾어 교회로 향한다. 표지판이 없어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하지만 조금만 걸으면 교회의 십자가 2개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교회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 기독교 100주년 기념비에 딸린 십자가다. 교회에는 아무도 없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한 장 박는다. 특이할 게 아무것도 없는 그냥 작은 교회다. (마라도 교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개신교 교회들의 건축물 대부분 그렇다. 건축사적으로 남길 만한 게 별로 없다.)
교회에서 나와 풀길을 따라 내려가니 처음 출발한 선착장이 보인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볼 곳은 마라도 분교다. 지금은 학생이 없어 휴교상태지만 애 딸린 젊은 부부들이 어여 들어와 열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 남았다, 못 가본 해안가를 서둘러 가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그늘에서 쉬기로 한다. 폭염에 습기로 온몸이 끈적끈적하다. 배를 타기 전 선착장 앞에 있는 통일기원비를 발견하고 사진에 남겨둔다. 요즘처럼 통일이 멀게만 느껴지는 시국에 소중한 기원비다. 저 멀리 다시 운진항으로 돌아갈 배가 보인다. 마라도를 이제는 떠난다. 안녕 마라도, 최남단의 막내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