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 <처음 만나는 동양고전>(생각의 길, 2013)
한 철학자는 인문학을 정의하길, ‘인간의 결에 대한 학문’이라 했습니다. 살결처럼 만져지고, 숨결처럼 느껴지고, 마음결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감지되는, 온갖 결들의 집합이 인간이라고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지요. ‘결’을 ‘주름’이라 생각해보면, 사람의 주름이 사람의 인간됨을 감지할 수 있는 코드로 작동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상상력을 펼치니, 문학은 인간 감성의 결이고, 철학은 인간 이성의 결이며, 역사는 인간 삶의 결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결을 만지고 느끼고 음미할 줄 아는 것이 인문학이겠지요.
이번에는 28명의 동양사상가를 만납니다. 사람마다 결이 다르니, 삶의 강도도 깊이도 방향도 다르겠지요. 시대의 풍광에 따라 삶의 거처도 다르니, 생각의 모습도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분들을 3개의 방에 따로 모셔봤습니다. 세 방의 이름을 인(人), 지(地), 천(天)이라 붙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 세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인(人)의 방은 주로 사람의 본성과 내면을 탐구하는 방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그 마음 다스림으로 삶을 살아갔던 사상가들과 그들의 책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지(地)의 방에서는 시대의 바람과 그에 따른 사회의 모색에 주력했던 사상가들을 소개합니다. 동양역사의 격동기를 살아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천(天)의 방에서는 자연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를 고민했던 사상가들을 소개합니다. 어찌 보면 가장 큰 스케일로 생각했던 분들이겠네요.
인문학적 글을 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사상가)와 나와의 대화’가 인문학적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자리에 ‘나’가 빠지면 그저 한갓 정보에 해당할 뿐 성찰의 길은 요원하다는 생각에, 불가분 ‘나’가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그렇게 노출된 ‘나’의 생각에 동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글에 나타난 수많은 ‘나’의 자리를 비우고, 독자분들의 자리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제가 많은 사상가를 만나며 나의 생각을 써나가듯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글을 써보시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나’들의 생각이 이루어내는 차이의 화음이, 또는 불협화음이, 넘쳐나기를 기대합니다. 제 글은 그 중 보잘 것 없는 하나의 시도에 불과하니까요.
막상 책으로 엮고 보니, 저의 거친 생각과 삶의 주름이 많이 보입니다. 아는 만큼 사는 것이 삶의 이치인데, 말만 많고 삶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라고 노자는 말했건만, 늘 역부족이네요. 조금씩 삶으로 부족분을 채워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책에 묶인 글들은 대부분은 『삶이 보이는 창』에 연재되었던 것들입니다. 5년 가까이 연재한 글을 책으로 낼 수 있게 해준 삶창 식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아니었다면 게으름이 특기인 제가 책의 분량을 채우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연재되었던 제 글을 애정으로 읽고 책을 내보자고 격려한 아포리아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내는 것은 천양지차의 일이라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 따릅니다. 글이 씨앗이라면 책은 열매와 같지요.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자라게 해서, 열매까지 맺게 하는 데에는 필자의 노력만큼이나 공력이 필요함을 늘 절감합니다. 출판사에 갈 때마다 놀라운 유머감각으로 환대해주고, 나를 키우는 충고를 아낌없이 해 주었던 서인찬 주간과 이상순 대표에게 특히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책 한 권 써보는 것이 소망이었는데, 어느덧 아홉 번째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낸 책이 어디로 흘러 어디로 가는 지 감지할 수는 없으나, 부디 좋은 사람만나 좋은 인연이 맺어지길 소망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한 장의 종이 속에 우주의 삼라만상이, 구름과 나무와 비가, 그리고 그대와 내가 들어가 있다고 말합니다. 보이십니까? 그렇게 우리는 이 책으로 시절인연을 맺었네요. 감사합니다.
2013. 5.
일산에게 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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