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쓰기 5 : 동서양철학 비교

김경윤, <철학의 쓸모> (생각의 길, 2016)

by 김경윤

여행을 하다가 앞길이 막히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막히지?

사랑을 하다가 실패하면 묻습니다. 왜 실패했지?

공부를 하다가 좌절하면 묻습니다. 왜 안 되지?

살다가 의미를 잃으면 묻습니다. 왜 살지?


길을 잘 뚫리면, 사랑에 들떠 있으면, 공부가 잘 되면, 잘 살고 있으면 물음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하지만 가던 길 막히면. 사랑이 떠나가면, 공부가 안 되면, 인생의 의미를 잃으면 물음이 시작됩니다. 철학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철학의 끝은 답 찾기일까요? 만약에 철학의 끝이 답 찾기라고 생각한다면, 철학은 이미 완성을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구한 서양철학의 전통을 살펴보면, 질문의 대가인 고대의 소크라테스로부터 다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현대철학자 질 들뢰즈에 이르기까지 질문에서 시작해서, 다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동양의 공자 역시 ‘내가 아는 것이 있느냐? 나는 아는 것이 없다’라고 무지를 고백했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만큼 물음을 중요시했습니다. 물음이야말로 철학의 본령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물음이 끝나는 곳에서 철학의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물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철학은 발원합니다. 그리하여 철학은 물음입니다. 좋은 답을 얻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잘 묻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면 철학의 쓸모는 무엇일까요? 너무나 당연히도 철학의 쓸모는 물음이고 의문입니다. 철학은 상식의 확인이 아닙니다.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따르는 합의도 아닙니다. 차라리 철학은 상식에 대한 반격이고, 다수결에 대한 의문이며, 진리에 대한 회의입니다. 이 물음의 대상은 권력도, 재력도, 심지어 진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아무런 권력도 없으나 권력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아무런 재력이 없으나 재력가의 근본을 뒤흔들기도 합니다. 진리의 담지자라 자부하는 종교도 철학의 물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물음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에 모든 것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 철학입니다.


물음을 억압하는 것을 독재라고 합니다. 단 하나의 진리만이 용인되고,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야 인정받는 사회를 독재사회라고 합니다. 이 독재는 정치적 영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시스템도 독재입니다. 학생들을 옥죄는 시험제도와 입시제도로 유지되는 학교 시스템도 독재입니다. 티종교를 용인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만을 구원의 도구로 삼는 일부 종교시스템도 독재입니다. 타민족을 배척하고 자신의 민족을 최고로 여기는 민족주의도 독재입니다. 물음이 사라진 곳에 독재의 독버섯이 자랍니다. 물음이 넘치는 곳에 민주주의의 꽃이 핍니다. 물음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면 철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그러나 물음이 필요한 세상이라면, 철학은 필수불가결입니다. 철학의 쓸모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현실은 팍팍하지만, 아니 현실이 팍팍하기에, 우리의 물음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가 힘든 시간을 쪼개가며 철학책을 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지혜를 나누며 새로운 물음을 제기했던 것도,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힘을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같이 읽을 철학자들은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의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가 소개됩니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지요. 그리고 서양에서는 플라톤, 루소, 스피노자, 디오게네스, 마키아벨리가 등장합니다. 동양과 서양철학자들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철학자들이 동서양철학사를 통 털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는 주저하지만, 다섯 개의 주제를 다루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다. 어차피 목표는 과거의 거울을 통해 현재를 비춰보고, 우리의 미래를 꿈꿔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존경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판적 물음의 시선을 견지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보게 될 내용은 일산 대화동에 있는 사과나무치과병원에서 10차례에 걸쳐 진행된 <동서양 철학자와 만남>에서 이야기한 것들입니다. 5개월에 걸쳐 격주로 진행되었던 이 강의는 경기 케이블(C&M)을 통해 녹화되어 방영이 된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강의에 참석하여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이나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길동무들입니다. 불가에서는 이 길동무를 ‘도반(道伴)’이라고 부르지요. 저는 이 강의를 통해 많은 도반들과 함께 웃고 즐기기도 했고, 우리 시대를 아파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책의 형식은 강의를 옮겨 쓴 것처럼 편안한 구어체를 선택했습니다. 마치 강의장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강의라는 특성상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상황적 현장성이 더 강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의록을 보니 중복된 내용도 있고, 시간 관계상 부족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빼거나 더하는 작업을 통해서 보충했습니다.


이 책을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모든 세대에게 보냅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동시대인이자, 나보다 더 사랑과 지혜가 필요할 테니까요. 그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 위해 강의를 듣고, 자청해서 강의초록을 작성해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러 곳에서 제 강의를 들어주고, 제 책을 읽어준 길동무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강의나 책 쓰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으니, 다들 건강하시고 웃는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함께 가는 길 즐겁게 갑시다.


자유청소년도서관에서

김경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8544487&start=slayer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문쓰기 4 : 동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