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을 달린다 6 : 태풍

최인훈 전집 5권

by 김경윤

(......) 카르노스의 권고, 용병(傭兵)대장으로서의 빛나는 무훈, 허무주의자의 용기가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비허무적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경우, 아이세노딘의 독립, 퍼스트레이디가 된 아만다. 카르노스의 중립 비동명 외고와, 섬에서 발견한 석유광이 교묘한 연결, 비밀 창고의 니브리타 재물과 정보를 써서, 카르노스의 정적(政敵)을 쓰러뜨리고, 니브리타를 협박해서 독립 전쟁을 빨리 끝내던 일, 메어리나와의 결혼, 카르노스의 심복으로서 20년의 숨은 정치 생활, 카르노스의 죽음, 아만다가 화교 선박업자와 재혼한 일, 메어리나에게서 찾은 다른 사랑.

“여보”

메어리나가, 그 섬이 그때처럼 젊고 사랑스럽게 불렀다. 아만다도 아빠를 보고 있었다. 바나킴 씨는 약간 당황했다. 그래 얼른 말했다.

“아무렴 태풍을 만나도 사는 길이 있지.”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활짝 웃었다. (498쪽)


1973년에 연재한 《태풍》은 여러모로 문제작이다. 일단 최인훈은 이 작품을 끝으로 장편소설을 20여 년 동안 쓰지 않는다. 40대에서 60대까지는 최인훈에게 소설의 시대가 아니라 희곡의 시대였다. (최인훈이 다시 장편소설을 쓴 것은 1994년 《화두》였다.) 그러니까 최인훈의 2,30대에 쓴 장편소설은 광장,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이어, 태풍으로 마감되니, 마치 5부작인 느낌이다. 우리는 젊은 시절(39세) 최인훈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태풍》은 가상역사소설이다. 국명과 지명, 인명들을 다 새로 지었다. 한국은 애로크, 일본은 니파유, 중국은 아니크, 미국은 아키레마, 영국은 리브리타, 인도네시아는 아이세노딘으로 표기된다. (철자 바꾸기, 뒤집어 읽기 방법으로 작명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오토메나크인데 한국인 金本의 일본발음인 가네모토의 변형이다. 소설을 조금만 읽다 보면 실제 나라를 예측할 수 있음에도 가상의 나라처럼 작명한 것은 벌어진 사건으로써의 역사와 벌어졌으면 좋았을 사건으로써의 소설을 중첩시킴으로써 역사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할 수 있기 위함이다. 요즘은 이런 역사에 허구를 더한 이야기를 팩션(fact+fiction)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태풍》은 팩션이다.


작가의 상상은 어떻게 역사에 개입했을까?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국적을 버리고 중립국으로 가던 중 바다 가운데서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태풍》의 주인공 오토메나크는 친일파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일본의 패망을 겪고 자살하려 하지만,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을 돕는 혁명가인 비냐킴으로 거듭나고,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와서,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앙받는다. 자살이냐 변신이냐, 죽음이냐 혁명이냐, 회피냐 용기냐의 갈림길에서 이명준의 선택과 오토메나크의 선택은 극명하게 갈린다. 작가는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하면서 희망을 발견한 것일까.


‘태풍’이 소설에 등장하면 극적 전환을 일으키는 장치가 된다. 주인공의 운명을 태풍을 전후로 극적으로 바뀐다. 이러한 ‘태풍’ 장치를 작품에 반영한 고전을 나는 적어도 두 권 정도 꼽을 수 있다. 1611년 경에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템페스트 the Tempest》와 1907년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쓴 《태풍 野分》이다. 《템페스트》에서는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복수를 준비할 수 있는 섬으로 가게 만들고, 《태풍》에서는 주인공에게 닥쳐진 시련과 고난으로 `이에 맞서 결단하게 하는 장치이다. 그러면 최인훈의 《태풍》은? 친일파 주인공 오토메나크가 인도네시아의 거물 정치지도자이자 독립투사인 카르노스(수카르노)를 돕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게다가 외딴 섬에 갇히게 되는 장치가 되니, 《템페스트》의 ‘태풍’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랑은 없나? 있다. 오토메나크는 자신이 감시하는 독립투사인 카르노스의 시중을 드는 인도네시아 여성 아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아만다는 나중에 대통령인 된 카르노스와 결혼하여 영부인이 되고, 이 영부인이 낳은 딸인 아만다가 나중에 오토메나크의 양녀(?)가 된다. 한편 오토메나크는 아만다에게 구애를 했으되, 정작 결혼은 영국의 여성포로인 메어리나와 한다. 사랑의 국제주의인가? 가족의 새로운 형태인가? 복잡하다.


위의 인용구는 소설의 맨 마지막 부분이다. 그동안 전개되었던 사건들을 스틸컷처럼 짧게 짧게 소개해서 소설 전체의 흐름을 일별하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 이후 제목으로 쓰였던 태풍이 등장한다. “아무렴 태풍을 만나도 사는 길이 있지.”라는 주인공의 대사는 온갖 고난 속에서도 사랑과 혁명으로 이를 이겨냈던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대사라고나 할까. 최인훈의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주인공 가족이 서로를 보며 활짝 웃는 것으로 끝나니, 내가 살짝 당황스러웠다. 최인훈에게 해피앤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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