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을 달린다 8 : 크리스마스 캐럴

최인훈 전집 6권

by 김경윤

기적(奇蹟). 기적. 경악. 공포. 웃음. 오늘 세상에도 희한한 일이 내 몸에 일어났다. 한강 근처를 산책하고 있는데 겨드랑이 간질간질해왔다. 나는 속옷 사이로 더듬어보았다. 털이 만져졌다. 그런데 닿임새가 심상치 않았다. 털이 괜히 빳빳하고 잘 묶여 있는 느낌이다. 빗자루처럼. 잘 만져본다. 아무래도 보통이 아니다. 나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윗옷을 벗었다. 속옷은 벗지 않고 들치고는 겨드랑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실소하고 말았다. 내 겨드랑에는 새끼 까마귀의 그것만 한 아주 치사하게 쬐끄만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다른 쪽 겨드랑을 또 들여다보았다. 나는 쿡 웃어버렸다. 그쪽에도 장난감 몽당빗자루만 한 것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 집으로 돌아온다. 담을 넘는다. 방 안에 들어서면서 얼른 윗옷을 걷어올리며 겨드랑을 들여다본다. 날개는 막 자취를 감추는 참이었다.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젖 안 떨어진 갓난 새끼 까마귀의 그것 같은 고수머리 털을 단, 장난감 몽당빗자루 같은 쬐끄만 날개를. (162~163쪽)



<크리스마스 캐럴>은 연작이다. 1963년 6월에 시작하여 1966년 여름까지 5편을 발표하였는데, 4년에 걸친 연작이다.‘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시기에 한 가족 사이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딸은 외박을 해도 될까? 크리스마스 때 모녀가 교회에 가서 밤샘을 해도 될까? 나에게 온 ‘행운의 편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성경책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나? 통행금지는 과연 필요할까? 이에 대한 탐구(?)가 소설의 내용이다.


작품은 주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신분은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어투는 신분과 다르다. 연작마다 사극투, 재판정투, 의회투, 정치연설투로 의사소통은 형식에 얽매여 있고, 결론은 허무하게 끝난다. 말을 나누고 있지만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긴 한데, 성격의 구체성과 통일성이 결여된 이 연작을 보면서,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당대 사람들을 생각한다. (우리 또한 외부의 압력에 의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자체 검열하고 있지 않은가) 프랑스철학자 미셸 푸코라면 ‘미시권력’ (혹은 ‘생체권력’)이라고 지칭했을 권력이 확인된다.


권력은 우리의 말과 행동만을 통제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도 통제의 대상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소설 속에서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의 거리통행을 금지했었다. (나도 통금을 경험한 세대다.) 단 하루 예외가 있었으니 그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야간통행금지의 역사를 살펴보니 광복 후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하여 1982년에는 일부지역에만 실시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88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1월 전국적으로 폐지되었다. (통금은 사라졌는가? 설마? 학교, 병원, 군대, 공장 등 많은 곳에서는 소속원들의 인신의 자유통제를 기본으로 운영된다.)

5편에 걸쳐 연재된 작품에서 던지는 화두는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생활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것을 다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구문화와 전통문화, 권력과 자유, 사상과 행동의 통제, 그리고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만난다. 가족 유머극은 블랙 코미디로 변형되어 우리의 상식과 통념을 비판하고, 억압에 굴종하는 우리에게 당신은 괜찮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위 인용구는 연작의 마지막 5편에서 주인공이 겨드랑이 아파올 때마다 밖으로 나가면 증세가 없어져, 통금을 어기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통금시간, 아무도 없는 거리를 몰래 산책하면 겨드랑에 통증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자꾸 무엇인가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겨드랑에 작은 날개가 돋았다. (아. 여기서 나는 이상의 <날개>를 떠올린다. 이상의 작품에서는 정오의 시간에 날개가 생기지만, 최인훈의 소설에서는 통금 시간에 날개가 생긴다.) 이 날개는 금지를 어긴 자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끄트머리에 이에 대해 질문을 하나를 던진다. 직접 풀어보시길. “나는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날개가, 산책 도중에 만난 사람의 모두를 마다하지는 않았다는 일이다. 날개는 사람을 가렸던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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