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을 달린다 9 : 두만강

최인훈 전집 7권

by 김경윤

침략자와 피침략자 사이에 가장 비극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암살의 방아쇠가 당겨지고 가죽조끼가 울고, 기름불이 튀고 주재소(=지서)가 타오르는 시기일까? 아니다. 비극의 큰 윤곽이 원경으로 물러가고 피침략자가 침략자의 언어로 조석(朝夕) 인사말을 하게 되는 때다. 일상 속에 주저앉은 비극, 비극의 구도 속에서의 희극, 아니 그 속에 있는 당자들은 희극이라고도 느끼지 않는다. 심판의 바로 전날까지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 계절의 양기, 엄청난 봄을 앞에 두고도 예삿봄의 징후밖에는 비치지 않는 역사의 돈 후안 같은 속 모를 깊이, -- 물론 어리석은 자에게만이지만, 1943년 H읍은 이런 아지랑이 속에 있다. (145쪽)



작가 최인훈은 1970년에 <두만강>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말’에 이렇게 회고했다. “대학 시절에 소설을 하나 쓰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두만강>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집필이 중단되고, 그 후에 다른 작품을 가지고 문단의 한 사람이 됐습니다. (...) 그럭저럭 한 10년 소설을 쓴 셈입니다. 그동안 내 마음에는 늘 이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강물에 다시 들어서기에는 너무 초심(初心)에서 멀리 와버렸습니다. 기억 속에 있는 강물은 삶의 강물과는 다릅니다. 삶의 시간에서는 다시 같은 강물에 들어설 수 없지만, 문학의 강은 어느 아득한 곡선을 돌아 처음과 끝은 맺어져 있습니다. 수원(水原)과 바다가 하나이며, 어머니와 딸이 한 인물인 이상한 세계입니다. 여기서는 흘러가면서도 흐르지 않고 흐르면서도 제자리걸음 합니다. 이런 생각이 이 작품을 발표하자는 데로 나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렇다. 1952년 아직 최인훈이 문단에 데뷔하기도 전에,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임시 수도가 옮겨지고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시절에, 두고 온 고향을 배경으로 최초의 소설 작품인 <두만강>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59년, 25세의 나이에 공식으로 등단하고 나서도 10여 년이 흘러서야 그의 첫 작품이었던 <두만강>이 발표되었다.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긴 소설의 뒷부분을 잘라버린 채로.


<두만강>의 배경은 1943년 두만강변에 있는 H읍(아마도 함경도 회령). 한국인과 일본인뿐만 아니라 여진족, 중국인, 백계 러시아인, 캐나다인까지 골고루 섞여 살았던 곳. 조선과 만주와 소련의 국경에 위치한 곳. 한말 이래 의병, 독립군, 빨치산 따위 항일 각파에 의한 대소 사건이 연달아 무대로 삼은 곳. 이곳은 소설의 배경이면서, 작가 최인훈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마도 최인훈 작가의 소설적 역사적 뿌리를 찾는다면 회령이 될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거의 일본인화되어, 일본식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일본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자신의 닻줄로 삼아, 오히려 독립운동을 하는 세력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하면서. H읍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현도영이나 한 의사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현경선(현도영의 딸)과 한동철(한의사의 막내아들)이다. 그들은 일본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하지만 평화로웠던(?) H읍도, 전쟁이 길어지자 보급품이 줄어들고, 공출이 늘어나고, 사상교육이 강화되고, 생활이 어려워진다. 일본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던 곳이었는데, 어느새 불평과 불만과 루머들이 서서히 고개를 내민다. 근대식 교육을 받은 주인공 현경선은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불만스럽고, 점점 삶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못내 괴로워한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칭찬만 받는 어린 한동철도 이로 인해 오히려 주변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지만, 왜 친구들이 그런 대접을 자신에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뜻 모르고 정체도 희미한 상태를 ‘아지랑이’에 비유하자면, “현경선은 그 아지랑이 속의 아지랑이 같은 젊은 처녀다. 한동철은 그보다 더 작은 아지랑이이다.”


해방을 맞이하기 3년 전, 일본은 전쟁승리를 매번 선전하지만, 패색이 점점 짙어가는 뒤숭숭한 시절에, 일본의 패망을 추호도 꿈도 꾸지 않았던 조선 민중의 삶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용한 구절은 자신이 조선인임마저 망각하고, 저항할 의지조차 잃어버린, 친일파들의 삶조차도 그리 유쾌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심판 바로 전날까지 아물거리는 아지랑이”와 같은 상황을, 엄청난 봄이 오고 있음에도 이를 예삿봄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삶을 예감케 하는 ‘프롤로그’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는 그 프롤로그를 이렇게 끝맺는다. “무쇠와 같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들은 아지랑이의 저편, 결코 속지 않는 그들의 무쇠 심장이 인도하는 곳, 깎아지른 바위산 꼭대기에서 진정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146쪽) 그곳은 일제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심장을 무쇠와 같이 단련시키고, 설령 시련과 고난이 닥치는 바위산 꼭대기와 같은 곳이라도, 진정한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곳이다. ‘두만강’은 아지랑이와 같은 사람들과 무쇠와 같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유장하게 흘러 바다로 가고 있다. 모든 것들을 안고, 모든 것들을 지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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