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을 달린다 11 : 웃음소리

최인훈 전집 8권

by 김경윤

빈터에 정답게 누운 남녀를 보는 순간 그녀는 환각이라고 의심하였다. 자기와 ‘그’가 거기 누워 있었으므로. 그것은 기쁨의 환각이었고 그 환각과 죽음은 맞먹었다. 바로 다음 순간에 환각은 깨어지고 그녀는 허망하게 떨어졌다. 그때 그녀는 그 떨어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다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환하였다. 그녀는 사랑했던 것이다. 몸을 판 돈을 선뜻 바치고 의심치 않을 만큼 순정(!)을 바쳤던 것이다. 순정. 그녀는 낄낄낄 웃었다. 연거푸 낄낄낄 웃었다. 그 천한 웃음소리가 자기의 목구멍이 아니고 방구석 어둠 속에 숨은 어떤 여자의 것인 것처럼 느끼면서 퍼뜩 잠에서 깨었다. 꿈속에서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금방 생각은 달아나고 다만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저 빈터에서 바람결에 끌리던 알릴락 말락한 여자의 짧은 웃음소리였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271쪽)



최인훈 전집 8권은 주로 60년대에 최인훈이 썼던 단편소설 모음이다. 처녀작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1959), 데뷔작 <라울전> (1959)뿐만 아니라 <우상의 집> (1960), <9월의 달리아> (1960), <수(囚)> (1961), <7월의 아이들> (1962), <열하일기> (1962), <금오신화> (1963), <웃음소리> (1966), <국도의 끝> (1966), <놀부뎐> (1966), <정오> (1966), <춘향뎐> (1967), <귀성> (1967), <만가> (1967) 등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웃음소리>는 1966년도 1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표제작인 <웃음소리>를 읽어 보았다. 영화 <식스센스>(1999년)를 연상하게 하는 심리스릴러 단편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자 자살을 결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 보았던 P온천으로 간다. 그곳의 산속 외딴곳으로 죽으러 가지만 이틀 내내 죽을 장소에는 다른 남녀들이 먼저와 누워있었다. 주인공은 몰래 숨어 이들 연인의 모습을 관찰하고 누워있는 여인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삼일째 되던 날 다시 찾아가니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 이미 죽은 지 일주일이나 된 주검 둘을 발견한다. 그 후 주인공은 P온천에서 일주일이나 더 묵다가 서울로 돌아가는데. 기차 안에서 다시 웃음소리를 듣는다. “그녀는 홀린 듯이 그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암암하게 들려오는 소리. 바로 그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274쪽)


물론 마지막에 듣는 웃음소리는 환각이나 환청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을 이미 죽은 주인공이, 자신이 죽은지도 모른 채, 자신과 동반자살을 한 장소를 찾아가고, 그럼에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서울로 귀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자신이 죽은지도 모른 채 어린이를 상담하는 아동심리학자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 분)처럼. 그 증거는? 세 번째날 다시 자살할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있기에 “조심스럽게 더듬어내려서는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둘러선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을 때도 그녀를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었다.”(273쪽) 왜, 돌아보지 않고,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을까? 그녀는 이미 죽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은 독자들이 몇이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만약에 내 짐작이 맞다면, 우리는 유령화자(주인공)이 이끄는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몇몇 작품설명을 찾아보니 남녀죽음에서 오는 충격적 체험(또는 대리만족)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하고 새로운 삶을 열게 되는 귀환형(떠남-머묾-돌아감)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름 설득력이 있어 내가 틀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지만, 나는 내 독해를 고집하련다. 이런 사람 한 명쯤 있어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을 테니.


<추가>

아, 전집 8권은 단편소설집이라 모든 작품을 일일이 소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은 고육책(苦肉策)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곳에 밑줄 그은 곳을 소개하려 한다. 그중에서도 최인훈이 <광장> 이전에 데뷔작에 해당하는 두 작품을. 다른 작품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살펴보기를 다짐하면서.


‘누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무튼 좋은 일이었다’ 하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이런 창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창 없는 집과 같다. 그는 좁은 생각과 외로움으로 숨막히고 끝내 미칠 것이다. 그레이 구락부는 그러한 ‘창’의 기사들의 기사단인 것이다. 그들은 투정보다도 노래하여야 할 것이 많은 누리를 받아들였다.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거의 아름다웠다. 창으로 바라보는 인물은 모두 소설 가운데 주인공처럼 흥미를 돋우며, ‘안’과 바깥과의 ‘어울림’ 속에 살아 있는 인물이었다. 창은 슬기 있는 사람의 망원경이며, 어리석은 자의 즐거움이 아닐까? 이것이 그레이 구락부의 믿음이다.(22~23쪽) - <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 중에서

많은 평론가들이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에 나오는 ‘창’의 이미지를 최인훈 작가의 소설 세계를 해명하는 핵심어로 꼽고 있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는 벗어나서 내부의 시선을 더 중시하는 작가의 모습이 집 안에서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연결된다.


침실에 돌아온 라울은 넘어지듯 침상에 몸을 던졌다.

그의 얼굴은 핏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젖혀진 목에 유난히 날카롭게 목뼈가 돋아 보였다. 바울이 돌아섰다는 말은, 지금껏 그가 망설이고 있던 마지막 장벽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라울은 제가 온 힘과 배움을 쏟아서 믿지 못하던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신성(神性)을, 바울이 돌아섰다는 한마디를 듣는 순간에 긍정한 것이었다.

또 한 발 늦었구나!

지금 느낌은 이것이었다. 나사렛 예수가 신이냐 아니냐는 어쩌면 나중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당했다!

가위바위보에서 엉거주춤 내민 손바닥 앞으로, 바울의 가위꼴 두 손가락이 덮칠 때 느끼던 무서움, (71쪽) - <라울전> 중에서


예수를 이단으로 단정하고 적극적으로 탄압에 가담하다가 개심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는 행동형 인간인 바울과, 그와 동문수학하고 학문적으로 훨씬 뛰어나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임을 지적으로 동의하지만, 결국에는 그를 따르지 못했던 라울을 비교함으로 무엇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인가를 묻는 기독교 배경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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