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요. 반도인들의 그 썩은 근성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막걸리는 흘러서 강을 이루고 부스럭 돈은 흩어져 낙엽을 이루었습니다. 또다시 피아노표, 쌍가락지표, 다리미표, 무더기표, 대리투표, 개표 주정의 난장판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난장 맞은 것입니다. 그들은 썩은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이 추악한 종족. 자존심도 지혜도 용기도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한 이 미물보다 못한 종족. 이들이 못나면 못날수록 제국의 이익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슬그머니 화가 나도록 이 못나고 귀여운 나의 반도인들. 이들은 돈 몇 푼에 예수를 판 유다의 격세유전 집단입니다.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제국이 제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이 돌아올 그날을 위해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 여러분. 사태가 이와 같으므로 제군은 희망을 가지십시오. (100쪽)
1965년 조인된 한일협정은 최인훈이 <총독의 소리>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인훈 작가는 직접적으로 “<총독의 소리>는 한일협정이라는 해방 후 정치사회사의 새장을 여는 사건에 대한 한 지식인의 충격과 혼란과 위기의식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의 통념적인 형식을 벗어나 보려고 했던 것이지요”라고 말한 바 있다. 1967년에 1, 2를 발표했고, 1968년에는 3이 그리고 마지막 4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76년에 발표되었다. (그 사이 1972년도에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최인훈 전집 9권에서는 <총독의 소리> 외에도 <주석의 소리>(1968) 외에 여러 중단편 작품들을 함께 모여 있다. 여기서는 표제작인 <총독의 소리>를 다룬다.
<총독의 소리> 연작은 소설 구성의 3요소라 지칭되는 인물, 사건, 배경이 없다. 시인이 홀로 듣는 ‘조선총독부지하부 소속 유령해적방송’의 목소리가 거의 전부이다. 게다가 방송에 사용되는 언어도 일체침략기에 사용되고 있는 어휘가 종종 사용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누가 방송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비현실적인 방송을 듣는 시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써서 무엇을 풍자하려 한 것일까? 최인훈 소설가는 “적의 입을 빌려 우리는 깨우치는 형식이다. 빙적이아(憑敵利我)이다.”라고 말했다. 오호라, 적(총독의 소리)에 빙의하여 우리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로군.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의 목소리인 총독(적)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봐야 한다. 그 소리에는 일본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제국주의자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숨어있는 제국주의의 잔재가 얼마나 뿌리 깊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인용구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온갖 부정선거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조선총독’의 입장에서 발표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 민족의 불행이 곧 일본의 기회이며, 우리 민주주의의 후퇴가 일본 제국주의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 인용구는 어떤가?
반도의 역대 정권은 본질적으로 매판 정권으로서 민족의 유기적 독립체의 지도부층이 아니라, 외국 세력의 한국에 대한 지배를 현지에서 대행해 줌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보존해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족(部族)의 이익보다 외국 상전의 이익을 먼저 헤아렸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본인 등이 이 땅에 남아서 후일을 기약케 된 것도 반도인들의 이 뿌리 깊은 노예근성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82~83쪽)
총독의 소리를 빌어 우리 역사에 등장한 정권들의 성격을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면, 최인훈 작가의 역사적 통찰에 다시 한번 무릎이 쳐지는 동시에, 이것이 비단 과거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겠구나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총독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작가의 말속에는 정치사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예술), 종교, 법, 말 등 그야말로 종횡무진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다. 최인훈 작가의 입심(!)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풍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로구나 깨달음과 더불어,)
아참, 총독의 소리가 끝나고 나오는 시인의 반응에 대하여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야겠다. 총독의 소리 두 번째 방송이 끝나고 시인은 어둠을 내다본다. 그러고나서 시인의 생각(상태)을 서술하는데, 무려 6쪽이나 되는 글이 단 하나의 문장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몇이나 될까? ‘~면서’의 연속, ‘와/과’의 중첩, 중문과 복문과 혼합문의 현란한 배열을 감상해 보시라. 가장 짧은 세 번째 방송 후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 8년 후에 작성된 네 번째 방송 후에는 시인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시인의 문장만 등장한다. 두 번째와는 달리 이번에는 아주 짧은 문장들이 시처럼 나열되고 있다. 8년이라는 세월이 시인의 마음을 바꾼 것일까? 문체가 확실히 변했다. 그리고 생각이 지구적으로 장대해졌다. 이렇게 변한 이유는 각자 생각해 보시길. 마지막 부분만 인용한다.
“더 많은 재앙을. 풍성한 재앙을. 햇빛처럼 우박처럼 원자의 재처럼 푸짐한 재앙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잉태되고 죄의 첫 공기를 숨 쉰다. 죄악의 목마 위해서 착함을 배운다. 밤의 바다 물결에 헤엄치는 것들. 집과 길과 찻집과 호텔과 시험공부와 얼어터진 손과 실성한 머리와. 초상난 집에서도 밥을 짓듯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거짓말을 지키기 위한 전차(戰車)들이 장갑을 끼고 밤 속에 웅크리고 있다. 깡패처럼, 카포네의 기관총수들처럼, 포탄의 시가를 물고, 민중을 깔보는 자들이 민중을 대변한다. 달에서 지구를 본 육체의 눈만한 의식의 눈이 있다면, 지구는 한 줄의 시가 되리라. 지구는 말이 되리라. 지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눈이 있다면 둥근 슬픔의 그림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으리라. 말을 건설하기 위해서 시인은 오늘도 불면제를 먹는다. 컴퍼스와 세모자와 함께 말을 존경하는 마음을 해소기침처럼 앓으면서.”(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