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년 일기

동상 이몽

by 빨간지붕

보디빌더 팔뚝만 한 무를 1+1이라고, 같이 마트 간 남편이 욕심을 내어 장바구니에 담아왔다.

섞박지나 해야겠다며 커다란 무 한 개를 말끔하게 씻어놓으니,

"생채가 더 맛있지 않아?"

생채가 먹고 싶다는 얘기겠거니 하고, 진로 변경하여 무채를 썬다.

" 강판에 갈면 편하잖아?"

편하려면 아무것도 안 해야지요 강판에 갈면 결이 뭉그러져서 맛이 없구먼..... (무음으로)

무는 가로로 일정한 길이로 자르고 다시 세로로 채를 써는 것이 나의 습관이다. 그냥 써는 것보다는 길이도 일정하고 반듯하게 자를 수 있어서 좋다.

" 자르는 것도 어렵게 자르는군"

오늘따라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말씀이 많아진 남편에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오지만 참자 참어.

무 채를 소금으로 절여서 수분을 조금 뺀 후, 고춧가루로 먼저 버무려 놓아 고춧물이 들도록 두고 당근, 홍고추, 청고추 등을 준비하고 새우젓은 다진다.

생강을 조금 넣으면 좋으련만, 찾던 생강이 없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자

"생강 사 올까?"

거실에 있다가 달려온 남편, 나의 저지로 다시 거실로 간다. 없는 것은 안 넣고 눈에 보이면 넣는 것이 나의 원칙. 재료들을 넣고 버무리며 참기름과 식초를 넣어 마무리한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시원한 무가 칼칼하고 산뜻하다.

" 아, 기분 좋은 맛이다"

한 입 먹은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루 종일 나의 귀를 피곤하게 했던 남편의 잔소리가 칭찬으로 바뀌니 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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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나와 남편은 집안 대소사를 출근하여 전화로 상의를 할 만큼 바쁘게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10여 년 전 명예퇴직을 하였고 남편은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그 후,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젊은시절의 자상함은 곧잘 잔소리로 변질되는일이 잦아졌다.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며 둘이 백수로 산 5년 동안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은퇴부부가 같은 취미로 같이 손잡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서로 다른 취미생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젊은 시절의 이야기고 나이가 들면 꼭 같은 꿈을 꿀 필요가 있을까? 서로 다른 꿈을 꾸며 그 꿈을 넘겨다 봐주고 궁금해하며 서로 응원해주는 것으로도 노년의 단조로움과 인생의 지루함을 비켜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래오래 더 사랑하고 더 존경하는 부부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초겨울밤,

스산한 바람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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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 썰어 절인 후, 수분을 조금 뺀다.

2. 고춧가루로 버무려 고춧물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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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근, 홍고추, 청고추 채 썰어 넣고, 마늘과 새우젓은 다져 넣고 버무린다.

4. 먹기 직전에 식초와 참기름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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