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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지붕 Sep 23. 2024

슬기로운 노년 일기

명절의 마무리는 칼칼한 전골이다

2024년 추석 명절도 무사히 지나갔다

많이 간소화를 한다지만, 우리 집 장남(나의 남편)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변치 않은 격식대로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간다.  명절 때가 다가오면 오후에 마실 달달한 커피를 준비하는 친절 외에는 남편이 하는 일은 없다. 모두가 나의 할 일뿐이지만,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있다.

성균관 의례 정립위원회는 " 차례상 표준안"에서 전이 필요 없다고 발표했다. 사계전서라는 고서에는 기름진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넋은 예가 아니라는 글도 남아있다고 한다.

성균관에서 그리 발표했다고 전을 안 부칠까? 



이렇게 준비한 전이 관심을 잃어갈 때쯤이면 우리 집의 특별식이 준비된다.





묵은지 1/2쪽을 잘라 들기름에 달달달 볶는다.

설탕 반 티스푼 첨가 (묵은지는 약간의 쓴맛을 동반하기도 하니까)하고 물 2컵을 넣고 김치를 익힌다.

전골은 찌개보다는 멋을 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내열 전골냄비를 꺼내온다. 몇 년 만에 빛을 보는 것인가?

김치와 국물을 담아놓고,



인기 있던 오징어 전과 동태 전은 자취가 없고 동그랑 땡과 호박전, 두부 전이 남아있다. 김치 위로 예쁘게 돌려 담는다. 생수 2컵을 넣고 (육수를 넣는다는 등의 소란은 필요 없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넣는다.



강불에 한번 끓이고, 불을 줄여서 중간불에서 재료들의 맛이 우러나게 끓인다. 이미 재료들이 각자의 맛들을 가지고 있으니, 육수를 넣지 않아도, 양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맛있다.



보기도 좋은 전골의 탄생이다.

하나씩 꺼내먹는 전도 느끼한 맛이 일도 없이 맛깔스럽다.






반주로 올라온 생막걸리를 슬며시 옆으로 밀쳐놓은 남편, 칼칼하고 매콤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쓱 해치운다. 이렇게 남은 명절음식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이젠 제법 소슬해진 바람에 가을이 묻어난다. 맘껏 가을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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