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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지붕 Aug 10. 2024

슬기로운 노년 일기

부부싸움 - 사랑과 전쟁

  

  오랜 산 부부는 싸울 일이 줄어들 줄, 아니 아예 없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온화해지고 더 푸근해지고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둘 만 남은 빈둥지에서 싸울 일이 남아있을까? 싶었지만, 웬걸! 우리 부부는 젊은 시절처럼 지금도, 아직도, 여전히 부부싸움을 열심히 하고 있다.


   오늘은 부부싸움 3일 차.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났는지 말을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항하여 나도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는 젊은시절 부부 싸음을 하면 목숨 걸고 싸웠다. 남편이 아내인 나를 너그럽게 감싸주는 일이 없고 나 역시 남편에게 져주는 일이 없이 끝까지 싸웠다. 싸움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하 호호 거리는 재미있는 부부사이가 되곤 했다. 동갑내기 부부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노년의 부부싸움은 그 여운이 짧지 않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은 젊은시절에만 해당되는 말인듯하다. 화해를 하고도 집안에 쨍한 한파가 누구러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다.




  해 질 무렵, 동네공원을 산책하며 붉게 떨어지는 노을을 보고 있자니 톡이 울린다. 

"오늘 연금 들어오는 날이니까 우리 맛있는 거 먹을까?" 

젊은 시절이었다면 "흥, 혼자나 많이 드셔 " 했겠지만, 이렇게 소모적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에 가능한 한 빨리 화해를 하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이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좋다는 메시지를 날린다.

단단했던 기세는 세월과 함께 물러진 듯, 젊은 시절처럼 치열한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신 전쟁이 끝나도 맹숭맹숭하고 껄적지근함이 남는다. 노년의 부부싸움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고 모두가 패잔병이 될 확률이 높은 게임이 되고 만다.




 연애하던 시절에 그 남자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문학을 전공하고 감성이 풍부한 그는 엽서에 시를 적어 보내고 아침저녁 연애편지를 보내 내 마음을 흔들어 댔다. 소심했던, 보잘것없던, 존재감 없던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준다는 생각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흠뻑 마음이 가버린 나는 몹시도 가난한 집의 장남인 것은 결혼의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 후 그는 기분이 나빠지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입을 닫았다. 그 이유를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반했던, 결혼을 결심하게 했던 그 남자의 풍부한 감성. 

 그 감성의 역주행이었다. 




 이제야 조금 알려나? 

남편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것 같고, 나 역시 역주행하는 그의 감성을 눈감아주려 하고 있다.

노년의 부부는 더 이상 기대하고,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좋은 전략인 것 같다.

세월의 강을 건너다보면 미웠던 날들도 고마움으로, 그리움으로 기억될 날이 오리니...

사랑과 전쟁의 세월을 지나 온 노년의 부부에게는 휴전과 평안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요리하고 남편이 설거지 열심히 한, 오늘의 특식

에어프라이어 삼겹살 구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까요?

아까운 시간, 잘 쓰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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