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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지붕 Aug 17. 2024

슬기로운 노년일기

소잉의 즐거움

  나에겐 퇴직할 때 사놓은 좋은 미싱이 있다. 물건 사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몇 날을 몰래 감춰놓았던 그 추억의 미싱이 있다. 그 미싱이 지금은 주인이 되어 의젓하게 작업방을 지키고 있다. 얼마 전엔 오바로크미싱까지 살짝 들여놓았다. 

  아직도 미싱 다루는 방법은 숙련되지 않아 바느질은 엉망이다. 박았다 뜯었다, 뜯었다 박았다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바느질의 즐거움이 있다.






  잔소리 대마왕인 남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늘 정리되지 않는 작업방에서 실밥 날리고 먼지 날린다고, 특히 거실까지 묻어 나오는 실밥을 보면 올라간 눈꼬리와 입에서는 레이저가 쏟아진다. 

  어느 날, 나는 슬쩍 남편의 민소매 셔츠를 멋스러운 색깔로 만들어 입혀주었다. 남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그 이후에 남편의 주문이 들어왔다. 긴바지를 짧은 바지로 가능해? 허리가 큰데? 바로 주문을 끝내주었다. 

 즉석 세탁소 경험을 해보고는 대만족이었는지 그 후론 남편의 잔소리가 사라졌다. 엄청난 미움을 받던 작업방에 가끔씩 남편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깨끗한 작업방이 되곤 한다.

이런 고난과 역경 속에 자리한 나의 작업방은 나만의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오늘처럼 딱히 아무 계획이 없는 날, 작업실을 엿보다 일을 벌인다.

  아기 원피스 만들기.

디자인과 재단까지는 쓱쓱 싹싹 잘되는가 싶지만, 역시 바느질은 어렵다. 특히 소매와 목선의 바이어스다는 바느질은 삐뚤빼뚤. 바느질은 엉망이지만 옷의 형태는 되어간다. 정신을 가다듬고 초집중모드로 바느질에 빠져든다. 늦게 배운 바느질 놀이에 더운 줄도 모른다.

  작업방 들락거리며 뭘 하는지 궁금했던 남편이 들여다보곤 " 비단이 옷이구나"  담박 알아보곤 미소를 짓는다. 그럴듯하다는, 잘한다는 칭찬이다. 

  오바로크로 마무리하고 단추 달고, 다림질까지 마치니 아주 예쁜 아기원피스가 탄생한다. 

  거실에 걸어놓고 오며 가며 감상하고 셀프로 칭찬하고 셀프로 감탄하는 영락없는 푼수가 되고 만다.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새로운 즐거움의 탄생이다.






 비단이의 첫 원피스 완성

비단이가 입으면 맞을까? 얼마나 예쁠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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