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의 냉철한 분석
누구나가 부러워할 완벽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믿은 커플, 해리엇과 데이비드.
그들은 결혼하자마자 자신들의 형편에는 다소 과한 네 층짜리 대저택을 구입하고, 10여 년 동안 네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그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명절마다 파티가 열리고, 수많은 친척들이 휴가를 보내러 찾아오는 화목한 가족의 상징이 됩니다. 이 젊은 부부는 이런 이상적인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네 번째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리엇은 예상치 못한 다섯 번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번엔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고, 뱃속 아이도 왠지 모르게 심상치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출산 끝에 태어난 다섯째 아이 벤은, 일반적인 아기라기보다는 어떤 원시적인 동물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내 아이는 가족 전체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완벽해 보이던 가족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호러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1980년에 출간된 도리스 레싱의『다섯째 아이』입니다.
이상적인 가족을 설계하려 했던 한 여성이 통제 불가능한 존재를 마주하면서, 그 삶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따라갑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화목한 가정이 이상하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벤에 대한 묘사는 공포영화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어머니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는 끝내 서로 융화되지 못하고 각자의 고립을 선택하게 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상적인 가족? 전통적인 가치?
누구나 한 번쯤은 이상적인 가족을 꿈꿉니다. 내가 겪지 못한 어떤 위대한 것을 결혼을 통해 이뤄낼 수 있을 거란 환상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이상이 마치 당연한 목표인 것처럼 강요하기도 하고, 결혼 생활의 고통은 ‘잠깐 겪는 과정’ 정도로 치부하곤 합니다.
해리엇의 선택은 윤리적으로 보면 최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그 누구에게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녀는 아이를 무모하게 낳았다고 비난받고, 괴물 같은 생명체를 살렸다고 지적받으며, 그 괴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평가받습니다.
“그 아이냐, 우리 가족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현실은 위선적일 수도
벤은 일반적인 아기가 아니라 야성적이고 본능적인 존재입니다. 배움도 느리고, 감정의 소통도 어렵습니다.
해리엇이 꿈꿨던 ‘이상적인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존재입니다. 그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금세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배제됩니다. 해리엇은 벤을 책임지려고 끝까지 애쓰지만, 결국에는 좌절하고 맙니다.
도덕성과 인간애를 말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 현실과 이상의 구분을 초월하여 - 그런 가치를 진정 실천할 수 있을까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사회는 말하지만, 실제 노력이 아무 결과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존재만으로 사랑받거나 존중받는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설계된 행복이 통제불가능할 때
“우리는 벌을 받고 있는 거야. 그냥 그거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오만에 대한 벌. 우리가 행복해지기로 ‘결정’했다는 것 때문에.”
해리엇은 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없애고 싶어 합니다. 사랑과 공포 사이에서 그녀는 끝없이 흔들립니다. 그녀에게 ‘이상적인 가족’은 곧 ‘행복의 기준’이었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존재는 불안과 공포의 상징이 됩니다.
결국 벤은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수용 불가능한 타자가 됩니다.
해리엇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의 존재를 조건화하고 배제하려 한 것은, 어쩌면 아주 자기중심적인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무조건적 사랑 혹은 수용
몇 년 전 코스타리카에서 힐링 세미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제하려 하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했습니다 (혹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척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랑이 가능한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는 '모성애도 조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무조건적 사랑은 몰라도 무조건적 수용은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도 상황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불안과 통제는 항상 함께하는 착각이겠죠.
그렇다고 인간이 모두 위선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믿는 순간, 인류애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인류애가 사라지면, 세상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나빠질 것입니다.
냉정하고 단호한 도리스 레싱
1980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여성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의 조건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분명히 저처럼 마음 한구석이 뜨끔할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