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일상의 설계도 그리기
'경외심'이란 단어를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 아니라 그런지 저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평소 엄청난 자연경관을 보았을 때 저는 흔히 '감동'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을 경외심이라고 표현할 만한지 딱히 기준점을 생각해 보진 않았습니다.
경외심과 감동은 조금 다른 말이라고 하네요.
사전을 살펴보니 경외심은 존엄하거나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느끼는 존경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입니다. 한편 감동은 강한 정서적 자극으로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것 전반을 의미합니다.
경외심의 영어단어인 AWE의 사전적 의미는 경건한 존경심에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느낌입니다.
이 책의 저자 대커 켈트너는 인간 정서 연구의 대가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와 <소울> 등에 자문을 했고 구글에서 이타주의와 정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켈트너 교수는 왜 하필 이 '경외심'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을까요?
경외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보다 큰 세계와 연결되는 경험입니다. 저자는 이 경외심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작은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더 큰 공동체와 자연, 우주에 속한 일부로서 의미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 인간은 더 선해지고 더 연결되고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외심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임을 자각하는 조용한 겸손에 관한 것이다.
경외심의 원천은 자연, 예술, 음악, 종교·영성, 집단적 움직임, 삶과 죽음, 도덕적 용기, 심오한 통찰입니다. 즉, 경외심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합니다.
경외심에 대한 그의 통찰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합니다.
산 정상에 서서 구름과 땅사이에서 본 장엄한 경관,
여행에서 낯선 식물과 동물을 보며 느꼈던 신비로움,
요가리트릿을 가서 느꼈던 영적인 연결,
유럽의 어느 오래된 성당을 방문해서 보았던 아름다운 예술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저자가 언급한 다양한 종류의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반론의 여지없이 그런 경험들은 저에게 단순한 리프레쉬 이상의 인생의 동기부여가 되어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반적으로 과도하게(?) 따뜻한 서술 때문에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우선,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으로 보이는 글의 태도 속에서 간과할 수 있는 문화적·계급적 편향성이 살짝 보입니다.
저자는 경외심을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열거된 경외심의 원천인 대자연, 예술, 집단적 체험 등은 대체로 시간적 혹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선택지입니다.
사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뒷산이나 집 앞의 건축물에서 경외심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익숙한 풍경이 아닌 낯선 장소나 새로운 시각의 전환이 더 강렬한 감동 즉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운 좋게 타히티 섬 인근에서 세일링을 하며 밤하늘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하늘을 빼곡히 채우다 못해 바다로 쏟아질 것 같았던 별빛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히티 사람들에게는 그 별들보다 오히려 뉴욕의 빌딩 숲이 더 경이로운 광경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 책은 ‘경외심’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사용합니다. 글을 다 읽는 중간중간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던 건, 저자가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까지 억지로 경외심이라는 범주안에 포함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경외심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주제가 맞습니다.
네이처에 소개된 한 연구자료 (Monroy et al., 2023)에 따르면 경외감을 경험한 날에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유의하게 낮으며 삶에 대한 만족감, 긍정적 정서 경험,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경외감이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동시에 강화하는 핵심 정서임을 보여주며, 기존의 긍정심리학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외감은 독자적인 치료적 잠재력을 가진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5-96555-w
책에서 ‘경외심’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환기시켰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주제입니다.
인생의 굴곡이 버겁게 다가올 때, 잠시라도 경외심을 찾아 떠나는 경험은 반복되는 순간들을 견디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오신 행복연구 교수님께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상에 작은 행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납니다.
경외심도 별반 다르지 않겠죠.
결국 자신을 위하여 일상 곳곳에 의도한 작은 행복, 작은 경외심을 설계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