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상 Apr 18. 2022

0. 시작 이전

오후 11시 57분.

하루 중에서 가장 비어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하루 중에서 가장 먹먹해지며 알게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시간이다.

어쩌면 가장 편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넓고 어두운, 창문의 자연광에 의지한 오래 전 버려진듯한 폐공장과도 같은 장소에서, 나와 단둘이 마주친 기분이 드는 시간이다. 달력의 숫자가 또 한번 지나가기 전까지의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당장 피곤한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이 나에게 주는 - 마치 태우다 만 향의 연기가 미세하게 떨며 풍기는 편안하면서도, 달다면 달고 쓰다면 쓸 냄새의 잔향이 중요하다.

그 잔향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갈변의 소리들과 섬뜩한 여운이 중요하다.


올해의 봄도 한달이나 지나갔는데, 방의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발 끝이 쌀쌀한걸 보면 아직은 찬바람의 계절인 듯싶다.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찬바람이 그다음 해에도 여전히 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의 사건보다는 사건들의 연속성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현재가 오기까지의 시간을 계속 되돌아보고 곱씹으며, 그 순간들에 얽매여있다.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돌아볼 시간들도 쌓이기 때문일까, 지금을 보는 것의 의미는 점차 지금까지를 보는 것이 되어가는 것 같다.

언젠가 이미 지나간 시간들은 그 순간에 머물러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들은 하나의 찰나가 되어 끊겨있다고. 시간이 흘러 된 지금, 나는 저 말을 그 무엇보다도 부정한다. 이전의 시간들은 그 순간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그 시간들이 찰나가 될지언정, 절대 끊겨있지 않다. 그 시간들은 나의 지금을 만들고, 나의 앞으로를 만들어나갈 것이며, 만들어나간다. 나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나아가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은 억울하고 아이러니하다. 나아가기 위해 계속 그 이전에만 머물러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아가기 위해 과거에만 얽매어져있어야 하는 것일까.


바깥에서부터 찬바람이 불어온다. 작년부터 계속해서 불었던 바람은 오늘도 불어온다.


토대가 없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시작은 사실 시작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시작을 하기 위해 있어야 한 모든 것, 준비과정, 마음을 다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작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시작을 함의 한 순간이 아닌, 시작이 포함된 시간의 흐름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시작은 특정한 한 순간, 그리고 시행의 결과이기보다는 오히려 큰 흐름 속 작은 한 부분이자 과정이다.

그렇다면 아마 시작이 중요함은, 정말로 시작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시작함이 곧 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나타내 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다. 시작까지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음을, 그 시간들이 올바르게 쌓여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작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 아닐까.


봄이 오기 위해서는 겨울이 있어야 한다. 겨울이 있기 위해서는 가을이 먼저 와야 하며, 가을 이전에는 여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름 이전에는 봄이 반드시 와야 한다.

죽어가고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앞으로 피어날 것들을 위해 존재한다. 가을바람에 실려 낙엽이 떨어짐은, 겨울의 찬서리에 모든 것이 사그라듦은 모두 봄에 새로이 자라날 것들을 품기 위함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그 무엇보다 몸으로 먼저 느낀다. 코 끝이 쌀쌀해지는 것, 등 뒤에 땀이 차는 것, 팔 위가 선선해지는 것… 우리의 주변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은 결코 순행하지 않는다. 잘 짜여진 인과관계의 일부분이 되어 순환할 뿐이다. 순환에서 시작과 끝을 나누는 의미가 있을까, 시작이라는 말은 진정 중요한 의미를 갖는게 맞는걸까.


지금 창문 밖에서 불어 드는 바람은 어쩌면 영원히 불어왔을지도 모른다. 나를 스치는 이 바람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시작한 걸까.


너무 오랫동안 불어온 나머지 그 시작이 무의미 해진 건 아닐까. 바람에게 어디서 시작했는지, 얼마나 불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지금 어디서 불고 있는지, 얼마나 세게 부는지가 더 중요할 거다. 아니, 어쩌면 그 시작은 시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경계가 희미한 순간이었을수도 있다. 작은 떨림에서부터 나뭇잎도 흔들지 못하는 산들바람이 되기까지, 그 산들바람이 나무를 뽑고 산을 옮기는 돌풍이 될 때까지는 과연 어디가 시작이었을까. 그렇다면 시작은 무엇을 담고 있는 걸까. 우리가 무언가의 시작을 인지하기도 전부터 계속해온 것의 시작을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럼에도 시작은 중요하다. 그게 시작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한순간을 시작이라 명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진행을 가능케했기 때문에 시작은 중요하다. 언제가 시작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그저 언젠가 시작을 했을 것임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어느 계절로 시작했건, 그 시작이 없었다면 나머지 계절들의 몸부림이야말로 무의미해졌을지 모른다. 바람은 영영 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순간들을 있게 해 준 것, 그것이야말로 시작이 중요한 이유 아닐까. 무엇이 시작인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일들이 훨씬 많다. 인과관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일들, 그런 일들에게 굳이 시작을 규정하지 말자. 언젠가 했을 시작보다는, 그 시작이 불러온 지금의 시간만을 바라보자.


오후 11시 57분

하루 중에서 가장 공허함을 느낌은 하루의 끝을 자각해서일지도 모르고,  새로운 시작을  것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새로이 찾아오는 12시는 지나간 하루의 끝도, 새로운 하루의 시작도 아니다. 그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를 나의 시간이 지나가는 흔적의 일부분일 뿐이다.  찰나에 집중하고, 신경 쓰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주변의 잔향은 언제 피운 향인지도, 언제까지 깔려있을지도 희미하다. 그래서 잔향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대부분의 것이 끝과 시작이 뚜렷하지도 않으면서, 그에 집착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의미한 일이다. 과거에 얽매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나누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시작 이전의 시간은 무엇을 뜻할까. 과정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언제 있었는지도 모르겠을 시작보다도 아득한 이전, 방황하는 것만 같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든 일들은 사실 그때 모두 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그 모든 일들이 설계되고 구축된 시간 아니었을까. 분명 시작이라는 찰나만을 보며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올 시간이 어떻든,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든, 전혀 예상할 수 없어도 그 모든 일들을 어떻게든 헤쳐나갈 마음가짐을 가진 내가 있지 않았을까.

그때의 내가, 시간을 쪼개어보며 찰나에 연연하는 지금의 나를 보면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시작 이전,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자. 모든것을 끊어 생각하고 각각의 시간마디에 묶여있기보다, 흐름 안에서 떠다니는 법을 배워보자.


시작 이전으로 돌아가자.

언제였을지도 모를 시작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반드시 알아채야만 중요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던 그 시간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