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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Oct 27. 2019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짐 로저스의 어떤 예견 

최근 세계사 책을 통독했다. 그동안 조각나 있던 지식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흐름이 보였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숫자를 보기보다는,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눈에 조금씩 들어왔다. 예를 들어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맺은 베르사유 조약의 무리한 내용을 보면 2차 세계 대전의 필연성을 짐작할 수 있고, 일본에 여전히 군국주의 세력이 기승을 떨치는 배경에는 소련의 공산화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미국의 기대가 작용했다는 사실 등등. 


지식에 대한 갈급으로 역사를 배우겠다는 나와는 다르게 굉장히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한 사내가 있다. 세계 3대 투자가 중의 한 명이라는 짐 로저스다. 도대체 '세계 몇 대' 운운하는 말들은 누가 지어내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명성과 실력이 어지간하니 나같은 사람 귀에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그는 그동안 서구중심주의 역사관에 갇혀있었다고 고백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이 혜안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활용한다. 바로 투자다. 


역사는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이 말을 마크트웨인이 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격언을 충실히 따르면서, 거기에 맞춰서 투자 계획을 세운다. 


각 나라들에 대한 미래 전망은 역사를 꿰뚫어 보는 그의 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이 진통의 고비만 넘고 나면 머지않아 한반도는 세게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나라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한국 사람이라면 이 책을 먼저 집어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나도 그랬다. 거기다가 50년 후 일본은 사라진다니. 민족주의적 감성이 충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어찌 이 책에 관심이 안 가겠는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로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춰서 언급을 했지만, 통일이 가지는 의미가 단지 한반도에만 국한되지는 않다고 나는 본다. 


산업혁명 이후 주도권을 잡은 유럽, 특히 앵글로 색슨 계열의 영국은 아시아를 휩쓸고 다녔다. 중국은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신나게 두드려맞으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중심축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지만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다. 레닌의 혁명이 성공하여 소비에트 연합이 만들어지고, 코민포름의 지원을 받은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들고 일어난다. 공산화의 물결을 막으려는 자본주의의 총아 미국은 서유럽의 경제 부흥을 위해 마샬 계획을 실행하고,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방파제 역할을 삼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련과 미국의 힘겨루기의 결정판이 한반도 분단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그러한 팽팽한 대립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고, 축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느 쪽으로 가는지, 누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보았을 때 한반도에 작용하는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는 건 분명하다. 


잘난 짐 로저스가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어찌됐든 그는 실용적인 사람이라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투자로 연결시킨다. 지행합일이 몸에 밴 사람이다. 


나는 그의 말보다 그의 행동에 주목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옮겼다고 한다. 책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찍이 중국의 대두를 '예언'한 짐 로저스는 2007년에 미국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다"라고. 


나는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람들은 흐름을 보고 거기에 맞춰 미리 준비를 하는구나. 


싱가포르는 말라카 해협에 있다. 말라카 해협은 대항해시대부터 아시아와의 교역을 할 때 최단거리로 애용하던 지름길이다. 마치 파나마 운하나 수에즈 운하 같은 존재 말이다. 싱가포르가 지금과 같은 국제 금융의 중심지가 된 데는 리콴유 총리의 탁월한 지도력도 있지만 지정학적 중요함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역사와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는 싱가포르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를 통해 탄탄한 기본기에서 응용력이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역설적으로 투자에 대한 조언서를 읽으니 세계사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 만약 내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면 그 시작은 이 책이라고 말해주겠다. 책 표지에 있는 말을 다시 언급하며 말을 마친다.


"그는 투자가이기 이전에 역사가다. 수많은 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은 역사학적 혜안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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