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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Nov 20. 2020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얼마 전부터 똥이 잘 안 나온다. 

이제 내가 잘하는 건 하나도 없다.


지인 카톡 프로필을 보다가 이 대목에서 빵 터졌다. 스쳐 지나갈 뻔한 저 문장에 마음이 간 건 '나 또한 잘하는 게 별로 없다'고 느껴서다. 


옛날 공동 우물을 기반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에서 기껏해야 수십 가구가 모여 살 때는 '내가 잘하는 게 있다, 없다' 따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부지런한 순둥이'가 되고

한약방에서 어머니 첩약을 지어오면 '효자 길동이'가 되고

가을철 감나무에서 감을 잘 따기만 해도 '손재주 좋은 막둥이'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이 좁아지면서 그 정도 잔잔한 두드러짐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말도 안 되는 미모나 근육을 자랑하거나,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미친듯한 노래실력을 뽐내거나, 나스닥에 기업 정도는 상장해줘야 인정받는다. 비범한 재능이나 능력이 없으면 발에 치이는 돌멩이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평범의 의미가 '능력 없음'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거다. '스마트폰'을 매개로 발달한 sns는 자기 비하에 아주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 기껏 해야 수 백 명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견주다가, 6,70억 인구 사이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하다 보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 또한 요즘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사실 사람이 별다른 장애 없이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미덕이지만, 미덕은 미덕이고 내 기분이 별로인 건 사실이다. 


이런 소모적인 사념에 빠져 있는 내게 묵직한 말을 전해 준 이가 있다. 난초처럼 청아한 형님.


OOO 선생님! (그분은 아직도 동생인 내게 존댓말을 한다)

제가 믿는 종교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하지 말라고 해요. 비교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거기서 유일하게 허락하는 비교가 있어요. 바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거죠. 

OOO 선생님이 자신을 낮추고 힘들어할 때, 과거의 나보다 더 나아졌다는 걸 명심하세요. 


나는 여전히 영세한 자영업자로 직원 관리, 마케팅, 진료 모든 게 젬병이다. 그래도 5년 전을 기억해본다면? 당시 부원장으로 일하던 나는 '개원'이 너무나 두려워서 '과연 내가 개원 문턱이나 밟을 수 있을까'하던 '덜덜이'였다. 지금은 그 두렵던 개원도 했고, 어찌 됐든 5년째 한의원을 꾸려나가고 있지 않은가.


원래 사람은 본인을 바라볼 때 '남'보다 더 인색하다. 내가 자존감이 낮다고 토로했을 때, 의외라며 깜짝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반대로 내가 볼 때 꽤 괜찮은데 스스로를 낮추는 이들도 꽤 많았다. 


자본주의의 '레드오션'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느라 내면의 에너지가 다 닳았는지도 모른다. 에너지 회복을 위해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의 한 구절을 들려주겠다.



성공을 위해 천재 수준의 두뇌를 갖추고, 소수정예 비밀결사단에 들어가고, 움직이는 목표를 맞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방해만 될 뿐이다. 100명이 넘는 인생 현자들이 제시한 성공 비결은 간단하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라

좋은 날을 하나씩 쌓아 좋은 인생을 만들어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충분하다. 



그렇다. 너무 애쓰지 말자. 과거의 '나'보다 아주 약간만이라도 더 나은 '나'가 되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이 말을 당신과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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