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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Dec 22. 2020

남을 돕지 마세요

20대 후반의 어느 날. 친한 형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OO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와 약속 장소로 걷고 있었다. 내 또래의 건장한 두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술에 취한 한 녀석을 옆 사람이 부축하며 걷는 형국. 지나쳐서 10미터 갔을까. 부부로 보이는 일행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좀 도와주세요! 저 놈들이..."


아내분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는데, 좀 전에 술 취한 놈이 우산으로 난데없이 머리를 때렸다는 것이다. 남자 둘인 데다가 체격 차이가 나서 남편 혼자 어찌해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 놈들이죠?"


20대의 호기랄까, 성큼성큼 걸어가 그 일행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친구들. 저 쪽으로 가서 얘기 좀 할까?"


그들은 생각보다 순순히 따라왔다. 하지만 그 부부가 잘못을 따지자 쌍욕을 했다. 반말도 서슴지 않았다. 반대로 그 남편분보다 덩치가 큰 나에게는 꼬박꼬박 '형'이라고 불렀다.  


"아, 형! 우리 그냥 갑시다!"

"이 분들에게 사과하고 가야지."


시간이 길어지자 주취폭력의 주인공이 나를 도발했다. 


"형, 우리 깽값 물어주기 없이 한 판 붙게." 


'내가 미쳤냐?' 속으로 생각하며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남편분이 내 멱살을 잡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멱살을 잡은 그가 '나도 이 근처 oo대학 출신이야. 보아하니 oo대학 학생 같은데 이러면 안 되지'라고 외쳤다. 


그렇게 외친 남편분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아귀힘을 풀었다. 


"아이고, 잘못 잡았네. 미안해요."


눈을 감은 채로 두 녀석 멱살을 잡으려다 나를 잡은 모양이다. 지지부진한 실랑이가 오가는 가운데, 경찰이 도착했다. 두 녀석은 나란히 경찰차 뒷좌석에 앉았다. 나는 증인으로서 경찰에게 연락처를 주었다. 그 부부도 꼭 연락하겠다며 연락처를 받아갔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어느 날, 검사에게 연락이 왔다. oo월 oo일에 내가 겪었던 일을 물었다. 나는 두 젊은이가 가해자이며, 부부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명확히 진술했다. 


내 할 일은 끝났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그 부부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이런 상황이 못내 서운하였다. 만약 내가 그 두 녀석과 싸움이라도 붙었다면? 재수 없어서 입 안 강냉이가 후두둑 털리거나, 쌍방폭행으로 경찰서에 나란히 끌려갔을지 모른다. 그런 위험을 각오한 행동의 결과로 나는 남편에게 멱살을 잡히고, 끝내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아무 일 없었으니 그저 서운할 뿐이지, 내가 크게 다쳤는데 연락조차 없었다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나는 '최성규 의인'을 떠올렸다. 1996년 8월 10일 성동구 성수동에서 '최성규'씨는 한 남자가 여대생을 성폭행하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범인을 추격하다 그가 휘두른 칼에 맞아 그만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불과 32세. 그에게는 30세 아내 조미숙 씨와 두 살배기 딸 예지가 있었다.  


한 두 달 지났을까. 그토록 뜨거웠던 관심과 온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위로 전화나 편지를 보냈던 사람 중에는 '조미숙'씨에게 프로포즈를 하거나 야릇한 전화를 하는 이도 있었다. 부인 조 씨가 가장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 남편이 구하려 했던 여대생이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구하다가 죽은 사람의 유가족에게 안부전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인터뷰 말미에 조미숙 씨는 이런 심경을 밝혔다. "자기 가정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정의가 무슨 소용이냐!" 


어느덧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이제 그 말 뜻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그걸 알아버린 내가 남을 도울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엇을 위해 그리 해야 하는가? 


내 경험과 다른 의인들의 뒷이야기를 듣다 보면 회의감이 든다. 정당방위 요건도 지나치게 엄격하고, 의인에 대한 보상도 박하기 그지없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없다. 남을 돕다가 몸싸움에 휘말리면 폭행범이 된다. 그렇다고 그냥 맞아주다가는 전신마비가 되어 평생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 아니, 목숨을 잃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의로움을 칭송하다가 나중에는 '병신 짓'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쥐꼬리만 한 보상은 유족을 두 번 울린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면 두 가지 선택만이 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도와주든가, 아니면 그저 갈 길을 가든가. 너무나 큰 간극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는 내 목숨이 너무 아깝다.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맞아 죽을 듯한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며 경찰만을 기다릴 만큼 비겁함도 갖추지 못했다. 아마 '병신'같이 손을 내밀지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소망한다. 곤경에 빠진 사람이 내 눈 앞에 보이지 말아 달라고. 조금은 비겁하지만 이렇게 기원하는 것이다. 

(2020.12)




https://blog.naver.com/everipedia/2220328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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