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는 말이 별로 없었다. 좋게 말하면 사색을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외톨이였다. 그러다가 대학교를 갔다. 초중고만 하더라도 한 반에서 좋든 싫든 몰려있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해지는 게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는 각자도생의 현장.
말로써 나를 어필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말하지 않는 나를 진득하게 기다려줄 이는 없었다. 갓 들어온 영업사원처럼 나는 모든 게 막막했다. 도덕책의 철수와 영이처럼 "'우리 친구 할까?' '그래, 좋아.'"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간이 흘러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생겼으나 여전히 말 수가 적은 나였다. 말이 절대적으로 적으니 화술이 빈약하였다. 어쩌다 내 의견을 말할라치면 그 어눌한 언변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무리 중에 한 명은 나에게 이리 말했다. "OO야. 너는 말을 하지 마!" 또는 "OO는 겉은 멀쩡한데 말만 하면 다 깬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더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 무리에서 나는 대화를 듣는 객체였을 뿐, 대화를 이끄는 주체는 아니었다.
벼룩은 제 키보다 수십 배를 높이 뛰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 벼룩을 높이가 낮은 통 안에 가두면 처음에는 여러 번 천장에 부딪힌다. 그러다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뛰는 능력을 제한한다. 나중에 통에서 꺼내 주어도 예전만큼 뛰지 않는다.
나의 말솜씨를 깎아내리는 말은 그대로 비수였다. 그렇게 그어진 선 아래에서만 머무는 벼룩이었다. 어느덧 졸업을 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그 '낮은 천장'은 희미해져 갔다.
나는 말이 많아졌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안 해도 될 말은 하거나 해야 할 말은 못 하거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남들과 말을 섞을 만큼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벼룩을 작은 통에 가두지 말자. 남에게 섣불리 한계를 얘기하지 말고, 남이 그어놓은 한계에 머물지 말자. 모두가 높이 뛰는 벼룩이 되자.
2021. 2. 10(수) 설날을 하루 앞둔 저녁, 한의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