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얼마 안 남았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설날인데, 느낌은 사뭇 다르다. 비단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어렸을 적, 설날이 되면 할머니가 사시는 승주읍으로 갔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그리고 고모까지 십 수명이 북적북적거렸다. 거기에다 인사차 들르는 동네 사람들까지 헤아리자면 동네잔치나 다름없었다.
어린아이들은 그런 분위기가 마냥 좋았다. 잠이 쉬이 오지 않아서 작은 방으로 건너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어른들 화투판을 기웃거리다가 개평이나마 얻어가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어른들 성화에 잠을 깬다. 제사를 지내고 소고기 뭇국에 밥을 먹는다. 그리고 신발을 단단히 동여매고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산 중턱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를 가는 것이다. 아직 눈 덮인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이제 와서 보면 얼마 안 되는 높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아득한 거리인지 투덜댔었다.
산소 근처의 눈을 털어내고 다 같이 절을 한다. 이러면 어린 마음에도 뭔가 큰 일한 느낌이 들었다. 산을 내려오면 이제는 먹을 일만 남았다. 작은할아버지 집에 가면 고기와 석화를 석쇠에 구워주었다. 그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옛일이다. 시골에는 할머니가 더 이상 안 계신다. 주변에 빈 집도 여러 군데 생겼다. 친척집을 가도 더 이상 고기 굽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낭만을 만끽하기에는 내가 너무 커버렸다.
지금은 명절을 맞이하야 의무감을 느껴 시골을 내려간다. 조부모님 묘를 뵙고 와야 숙제를 마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친척들이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의 가벼움과, 내 몫을 다하려는 지금의 무거움 중 무엇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간관계가 갈수록 팍팍한 요즘, 두런두런 얘기 나누던 설날 저녁의 기억이 제법 떠오른다.
2021. 2. 9(화) 설날이 며칠 남지 않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