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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Dec 14. 2017

일본은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안녕하세요! 신상목 작가님. 


최근에 작가님의 책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를 읽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립니다(예전 같으면 펜을 들었다고 했겠지만요). 외교관이라는 촉망받는 직업을 그만두고 '기리야마본진'이라는 우동집을 경영하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가시는 작가님의 인생 경로도 흥미로웠지만, '훈련된 외교관'의 시선으로 새로운 일본 이야기를 풀어내신 데 감탄을 금치 못 했습니다.  


작가님의 말마따나 우리가 '일본'하면 가슴 한 편에 불끈 솟아나는 감정이 있지 않습니까? 일례로 한일 축구경기가 열린다고 하면, 일본의 축구 인프라나 기량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또한 한국 축구선수들의 실력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이기길 바랍니다. 지거나 비기는 결과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며 목에 핏대를 세웁니다. 민족적 울분 또는 자존감이 극도로 표출되는 '일본'이라는 나라 앞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따져볼 때 읽어볼 책이더군요.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 유신'이 아닌 '에도 시대'로 훌쩍 건너뛰셨죠.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일본 에도 시대가 근대 일본으로 가는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선진국이었던 일본을 만든 게 그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적 행운과 기회도 작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시의적절하게 활용했던 것도 일본인들의 실행력과 의지가 작용한 결과겠지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눈엣가시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금의 도쿄인 '에도'로 쫓아냈지요. 척박한 땅을 개간하며 실력을 쌓던 그가 천하를 통일하자 시행했던 두 가지 정책이 주효했다고 작가님은 지적했더군요. 


바로 참근교대제와 천하보청. 


재밌었던 것은 이 두 가지 정책을 시행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자신도 큰 복안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독자적인 세금 징수권을 가지고 있던 다이묘(영주)들을 견제하기 위해 어떻게든 쥐어짜 낸 아이디어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경제를 급성장하게 만들었죠. 


참근교대제는 예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자신이 볼모로 잡혔던 경험을 살려,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에도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인질 제도지요. 수많은 번주들이 수행원들과 함께 에도를 오고 가며 뿌리는 돈이 상공인과 노동자를 먹여 살렸고, 자연스럽게 도로와 교통이 발달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정책인 천하보청은 공사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을 다이묘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의 표현 대로 '국부가 고스란히 인프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핵심이죠. 세금을 거두었더라면 생겼을 매몰비용이나 착복 없이 모든 투입이 실제적인 인프라로 전환되었다니 아주 효율적인 재정정책인 것이죠. 


정통성이 약한 쇼군이 다이묘를 끊임없이 견제해야 하는 불안정한 위계질서가 오히려 일본에 득을 가져온 것입니다. 물론 취약한 상하관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죠. 오히려 무수한 쿠데타로 국가의 발전을 갉아먹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불리함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린 에도 막부의 고민이 빛을 발한 것이겠죠. 


에도 시대부터 쌓여온 국가와 사회의 역량이 근대화의 기반이 되었고 그 덕분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계기를 거쳐 빛을 발한 것이 지금의 일본이라는 것이 핵심이더군요. 


한국 근현대사를 볼 때 느꼈던 의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었습니다. 다들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보지 않습니까?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성공했더라면? 또 갑오개혁은?


책을 읽고 나니 그러한 의문은 우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역사적 이벤트가 바뀌는 정도로는 우리나라가 일본이 되지는 못 했을 겁니다. 그동안 쌓여온 몇 백 년의 인프라가 달랐으니까요. 






한 때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유명했었습니다. 전여옥 씨가 쓴 책이었죠.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딱 맞는 제목과 내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일본은 있다'라는 책도 나왔었죠. 일본을 보다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책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일본은 있다고 생각하시더군요. 다만 현재 일본의 모습을 근거로 삼기보다는, 그 원동력이 되었던 몇 백 년 전을 언급한 것은 새로운 시도라 여겨집니다.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였고 우리나라는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역사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일본을 욕하는 것은 좋지만 그로부터 바뀌는 현실이 없다면 우리는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정신승리만을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실패한 역사의 책임을 어느 한 시대 사람들에게만 모두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일본이 에도시대 260년 동안 기틀을 잡아서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반대로 조선에서도 흥선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에게만 근대화 실패의 책임을 물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실체를 인정하고 부국강병 전략을 세우지 않았던  조선왕조 역대 조정을 모두 질책해야 합니다. 


끝으로 작가님의 견해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고자 합니다. 시대를 앞서간 지도 '이노즈'를 만들었던 '이노 다다타카' 이야기 말입니다. "지도의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막부는 이노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합당한 대우를 하였다. 막부는 (중략) '묘지타이토'(무사계급 신분의 상징으로서 성을 사용하고 칼을 휴대할 수 있는 권리)를 허가하고 신분 상승을 공인하였다. 지도가 완성된 후에는 그 손자인 다다노리에게 봉록이 지급되고 에도에 사택이 제공되었다." 나라에 공헌을 한 이에게 화끈하게 보답을 한 에도시대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국가의 발전은 사람에 대한 대우에서 시작된다 생각하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P.S : 막부의 지원을 충분히 받았던 '이노 다다타카'의 예시에 선명한 대비를 주기 위하여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김정호'이야기를 삽입하려 하였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에 '김정호'의 정밀한 지도를 보고 조정에서 그를 옥에 가두고 지도를 태웠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해당 내용은 일제가 흥선대원군을 매도하고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대목을 날조한 것이라는군요. 생각보다 조선에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워낙 두 국가 간의  국력 차이가 컸던지라 웬만한 노력은 빛을 보지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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