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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Nov 11. 2017

사람이 책이다 #1

지그시 바라보기

인구에 회자될 정도의 저명한 사람만이 유별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힘든 우여곡절과 순탄치 않은 여정을 겪어왔다. 다만 이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부의 정도와 명예의 축적에 근거하는 등 획일적이라 그들이 주목을 받지 못 했고, 따라서 삶의 이야기가 발굴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그 과정에서 들었던 일들을 각색과 소설화라는 방식을 통해 은근히 드러내 보려고 한다. 사람보다 더한 책은 없으니까.



* 글의 세부적인 내용과 인물들의 이름은 실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매케한 연기가 복도를 뒤덮었다. 다급한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고, 충격과 공포가 정신을 온통 휘어잡았다. 즐거웠던 시간은 끝났다. 


바로 전 날 그는 청소년수련원에서 레크리에이션 사회를 보며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이제껏 활동해왔다. 보통 천 여명 정도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지만, 이번은 500명 정도로 단촐하여 평소보다 더 여유있게 흐름을 이끌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 대다수인 청중은 자그마한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으며 호흡을 잘 맞춰주었다. 


그의 옆에는 제자처럼 아끼던 세 명의 이벤트 강사가 있었다. 이번 수련회에서도 든든하게 제 몫을 해낼 것이었다. 


"자, 부모님에 대한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몇 번이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을까요? 나를 위해 희생과 고통을 참고 견디는 부모님을 속이고 마음 상하게 한 적은 없었나요? 심지어 엄마가 나 때문에 우신 적은 없을까요? 지금 부모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내 생각은 얼마나 하고 계실까요? 분명 이 시간 우리 부모님들은 여러분을 걱정하며 보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도 그만큼 부모님을 생각하나요? 이 시간 이후 우리는 부모님의 은헤에 감사하고 말씀을 잘 따르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감성 충만한 아이들의 흐느낌이 들리고, 약간은 산만했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경건한 의식을 통해 잔잔한 감정의 파고를 느끼게 해주면 아이들의 추억이 하나둘 켜켜이 쌓여갈 터였다.  



"자, 이제 눈을 뜹시다. 오늘 우리는 촛불의식을 통해 부모님, 선생님, 친구와 이웃들의 고마움을 느껴보았습니다. 우리 지난 날의 잘못은 이 밝은 촛불 위에 모두 태워버리고 보람찬 앞날을 약속하면서 하나 둘 셋 하면 촛불을 끄겠습니다."


촛불의식을 마지막으로 오늘 저녁 행사는 모두 마무리되었다. 지도교사의 인솔에 따라 제각기 숙소로 흩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도 자리를 정리하였다. 수없이 반복했던 일이지만, 이렇듯 마무리를 할 때는 굳어있던 몸에서 긴장이 풀리며 팔다리가 노곤해진다. 내일은 아침부터 또 다른 일정이 있으니 일찍 자둬야한다. 


코를 골거나 뒤척이는 소리 외에는 고적한 숙소. 갑자기 비명이 들리더니 적막함은 순식간에 아우성으로 변했다. 어디선가 불이 난 모양이다. 아이들이 너무 많다. 우선 어른들을 모아야 한다. 창가로 가서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근처 숙소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불이 났다."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소리를 듣고 올라올 것이다. 이제부터 최대한 아이들을 밖으로 보내야 한다.  


"저기로 가. 저기. 앞으로만 쭉 가. 빨리."


복도 끝에서 그가 데려온 제자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저 쪽은 얘들이 다 못 나온 모양이에요. 저쪽으로 가볼게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남아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사방은 더욱 아득해졌다. 눈 앞을 가리는 연기가 너무 심해 이제는 숨 쉬기조차 버거웠다. '이제는 나도 나가야겠구나'


경황없이 현장을 수습하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깨달았다. 왜 안 나왔지? 경찰의 공식발표는 다음과 같았다.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등 23명 사망'


유가족이 몰려왔다. 도저히 볼 면목이 없었다. '내가 데려오지만 않았다면. 기철이, 희준이, 영식아'. 책임은 엄연히 수련원측의 시설 관리 소홀이었고, 누구도 그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도의적인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희생된 제자들을 위해 개인 사재를 상당부분 내놓았다. 한 때 국가대표 상비군일 정도로 체력이 좋았던 그 자신도 그 날 화재로 연기를 다량 흡입하여 호흡기 질환을 안게 됐다. 더불어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이제는 십수년 전 일이 되었다. 괜찮은 한의원을 찾고 있다며 저녁 무렵 나타난 그는 괴짜 같았다. 최근에 이 근처로 이사 왔으며, 오래 다니던 병원을 대체할 만한 데가 어디 있을까 하여 여러 군데를 들렀다고 한다. 가슴 속 사연을 듣기 전까지는 속세를 초탈한 도인 같아보였다. 풍찬노숙도 마다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왜 그렇게 술을 드세요? 술 안 드시면 더 건강해질 겁니다."

"나는 내일 눈 뜨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에요."


나의 언어는 일반 상식에 비춰볼 때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말이었지만, 한 개인의 특수성과 개별성에 의거해서는 온전한 이해와 공감을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그의 대답을 듣고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힘내', '잘 될 거야' 류의 섣부른 격려는 실제로 힘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진정으로 바라지 않는, 그래서 외려 이해받고 있지 않다는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라는 것까지.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친구를 백악관으로 불렀다고 한다. 앞에 앉혀놓고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힘든지를 연설하듯이 한꺼번에 쏟아냈다. 친구는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도, 해줄 수도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과정을 통해 링컨은 다시 일어설 에너지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특별한 조언이나 기가 막힌 묘책이 아니다.(그런 게 없음은 이미 각자 나름의 인생 경험에서 얻지 않았던가?) 단지 내 말을 조용히 들어줄 상대방이 절실할 뿐이다. 


나는 그의 말을 그저 지그시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상다반사처럼 평범하게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기로 말이다. 가끔씩 그가 검게 타버린 속내를 드러내면 입보다는 귀를 열어 바라보기로 했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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