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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Jul 09. 2022

바보야, 목적은 그게 아니잖아.

한의원 2.0을 하면서 교육 시간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한의원 1.0때는 모든 직원이 다 같이 아침에 출근했다. 모두가 모이니 교육을 진행하기 수월했다. 하지만 한의원 2.0은 사람이 더 많아서, 오전 출근, 오후 출근, 종일 근무 이렇게 세 가지 근무 형태가 있다. 오전 출근과 종일 근무조는 그나마 아침 출근 시간이 같지만 오후 출근조는 오후 3시부터 나온다. 다 같이 모였을 때 교육을 하고 싶어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혼자 고민하다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오후 출근 조의 퇴근 시간을 앞당겨서 그 시간만큼 출근도 일찍시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상 퇴근시간이 한의원 영업시간보다 더 늦게 설정되어 있어 가능한 옵션이었다. 한의원 영업에도 지장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오전 출근조와 오후 출근조가 겹치는 30분을 이용해서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게 내 계획. 물론 여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조율사항들이 숨어있지만 거기까지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렇게 계획하고 추진하려는데 기존 직원들의 불만이 조금씩 들려왔다. 오전 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오후 조는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밀어붙여야지'하고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평소 인연이 있는 OOO한의원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해서 교육을 다 같이 하고 싶어요. 오전 조와 오후 조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근로시간을 조정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 같이 모이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교육이 목적이죠. 처음부터 그 근로시간이 아닌데 억지로 바꿔서 불만이 쌓이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두 번에 나누더라도 교육은 할 수 있잖아요."


아, 문화적 충격. '다 같이 모여야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명제에 지나치게 집착을 했구나.' 다 같이 모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교육은 가능하다. 억지로 시간표를 바꿔서 생기는 부작용보다, 교육을 2번에 걸쳐 하는 번거로움이 더 사소하다. 


운영을 하다보면 이런 순간들이 많다. 내 딴에는 한의원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느덧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이 목적인양 변질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매일 아침에 브리핑이란 걸 했다. 그 날 진료할 환자분들에 대해 한 번씩 짚어보고 공지사항을 나누는 자리다. 아침에 오전 출근자들을 대상으로 내가 브리핑을 진행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실장님이 오후 출근자들을 불러모아 같은 내용을 다시 브리핑한다. 실제로 해보니 오후 출근자들을 일일이 불러모아 자리를 만드는게 은근히 고역이라며 실장님이 심경을 밝혔다.


이 또한 브리핑의 형식에 집착해서 생긴 일이다. 꼭 실장님이 모두를 불러모아 브리핑을 하지 않아도 전달만 잘 되면 된다. 그 날 이후로 방식을 바꿨다. 아침에 들은 브리핑 내용을 데스크 책임자는 데스크 오후 출근자에게, 치료실 책임자는 치료실 오후 출근자에게 인수인계한다. 오전과 오후 출근자 교대시간을 활용해서 각자가 전달해주니 깔끔하게 해결됐다.


일의 형식과 내용 중 형식에 집착해서 이를 목적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럴 때 그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이 행동을 하려 했는지 한 번씩 돌아봐야 한다. 자칫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를 뻔한 나를 돌이켜준 그 OOO한의원 실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202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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