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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Aug 11. 2024

달밤에 공동묘지

'탁', '부스럭'. 소리가 날 때마다 흠칫 놀랐다. 청설모로 짐작되는 동물이 어둠을 뚫고 나무 사이를 옮겨 다녔다. 사람 하나,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속을 나는 핸드폰 불빛 하나에만 의존하여 내려가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몇 달 전부터 소위 '매너리즘'이 나를 한껏 휘감았다.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나태함이 스멀스멀 생겼다. 나보다 잘난 이들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는 커져갔고, 일을 하면서 남 탓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월급 루팡'에다가 '빌런'이 될 판이다. 


몇 년 전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당시 일한 시간만 보면 몸을 갈아 넣었지만 매출은 정체되어 있고 직원들은 말을 듣지 않고 하루하루가 고단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뭐에 홀린 듯이 지하철을 타고 사가정역에 내렸다.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사가정 공원을 통해 망우산에 올라 수많은 무덤가를 지나 입구인 '망우역사문화공원'까지 내리 걸었다. 망자의 공간을 지나가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다시 초심을 돌아봐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채비를 차렸다. 장바구니 비슷한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으니 더 넣을 게 없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사가정역에 내려 망우산을 향한다. 한 밤에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인적 없는 산길을 오른다. 너무나 어두워서 살짝 겁이 나지만 이미 시작했기에 무를 수는 없다. 산 중턱에 오르니 간헐적으로 길을 밝혀주었던 가로등마저 사라졌다. 이 밤길을 수 킬로미터나 가기에는 부담되어 1킬로미터 남짓한 아치울마을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암흑 속을 핸드폰 불빛 하나만으로 뚫는다. 좀체 끝나지 않는 내리막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뒤에 누가 따라오지는 않는지, 앞에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지 않을지 하는 불안감이 시종일관 나를 휘어잡는다. 온몸의 신경이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밟는 발 끝에만 쏠리며 잡념조차 튀어나올 겨를이 없다. 


인생에서 '막막함'을 느낄 때 이 순간을 다시 기억하자고 되뇌는데 드디어 인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이 평탄해지며 아치울마을이 보인다. 왔던 길을 뒤돌아보니 어둠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니 땀으로 푹 절어 축축해진 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법륜스님의 글을 보다가 이런 대목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수행자가 수행을 하던 중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을 때마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주위 사람들이 그 수행자의 행동을 의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이 수행하기 전 세속에서 입었던 옷을 보러 간 것이다. 마지막 입었던 옷을 보며 나태하고 무기력한 본인을 일깨우려 함이다. 나 또한 초심을 가다듬기 위해 몇 개월에 한 번씩 망우산에 와야겠다. 첫눈이 내릴 때쯤 하얗게 쌓인 눈을 밟으며 마음을 정화시켜 보리라.(2024.8)


아치울마을에서 망우산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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