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콩물 병을 꺼냈다가, 우연히 영어 명칭을 보게 되었다. soybean soup. 수프라니? 따뜻한 크림수프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나에게 콩물이 수프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아도 "soybean soup"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콩물"은 콩을 물에 담가 불렸다가 갈아 만든 것이다. 수프(soup)는 끓는 물에 야채와 육류나 생선 등을 삶아서 육수가 우러나올 때까지 만드는 국물 요리다. 더 넓은 정의가 있는지는 모르나, 여기까지만 봐도 콩물은 수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water를 넣어서 "soybean water" 또는 "soaked soybean water" 같은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냥 발음 그대로 "kongmul"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우리가 레스토랑에 가서 외국 음식을 접하면 의미를 번역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경우는 없다. 봉골레 파스타, 피자, 바게트, 스테이크, 딤섬, 케밥, 필라프, 푸아그라, 빠에야, 하몽, 팟타이, 똠얌꿍, 푸팟퐁커리, 솜땀, 리소토, 소바, 오코노미야키, 스시 등등.
장어덮밥이라고 번역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본 음식인 '하츠마부시'도 원어 그대로 쓴다.
우리는 왜 굳이 번역을 하면서 외국인을 의식하는가? 그마저도 엉망이다. 곰탕을 "Bear Soup", 육회를 "Six Times", 대패삼겹살의 대패를 大敗(대패; 큰 실패), 한강을 "Han River"로 쓰는 사례들이 있었다.
의미를 번역한다고 해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지도 않다. 그냥 우리말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고, 그 옆에 간단한 설명만 추가하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묵은지찜 | Mugeunjijjim | Braised Pork with Aged Kimchi"
그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사람들이 지금껏 살아온 문화와 역사가 모두 농축되어 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 그리고 음식을 제대로 알리려면 그 명칭 그대로 쓰는 게 본래 목적에도 맞다. 더 당당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2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