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조금만 길어지면, 여름은 금세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열듯, 서랍 속 선풍기를 꺼내게 되는 것도 어쩌면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선풍기를 꺼내드는 손길과 동시에, 작년 여름의 불편함이 머리를 스친다면 고민은 시작된다. 시원할 줄 알고 샀던 모델이 생각보다 바람이 약하거나, 디자인이 예뻐서 골랐는데 전기요금만 잔뜩 올랐던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올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어떤 제품을 골라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이야말로 선풍기를 고르는 기준을 새롭게 세워야 할 때다.
우리는 흔히 선풍기를 고를 때 날개 수를 먼저 떠올린다. 삼엽 날개는 시원한 강풍이 나온다고 알고 있고, 오엽이나 칠엽처럼 날개 수가 많을수록 바람이 부드럽고 소음이 적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실험에서도 삼엽은 초속 3.8m, 오엽은 3.4m로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이며, 체감상 시원함이나 소음은 사용자의 환경과 위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날개 수만으로 성능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진짜 중요한 건 바로 모터다.
BLDC 모터는 조용하고 섬세한 바람 조절이 가능하며, 발열이 적어 수명도 긴 편이지만 그만큼 가격이 다소 높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AC 모터는 강한 바람을 낼 수 있고 비교적 저렴하지만, 소음이 크고 부드러운 바람 조절이 어렵다는 점에서 취향이 갈릴 수 있다.
최근엔 두 모터의 장점을 혼합한 DC 모터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발열로 인한 마모 속도 때문에 오히려 수명이 짧을 수 있어 사용 환경에 따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모터는 단순히 바람의 세기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풍기의 전반적인 내구성과 체감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하기 쉬운 포인트는 이월상품이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늘 최신 모델이 진열돼 있지만, 온라인이나 전자제품 양판점에서는 작년 모델이 반값 수준으로 판매되곤 한다. 겉모습은 조금 달라도, 회전, 타이머, 바람 조절 등 기본 기능은 그대로이며, 내부 모터나 전력 효율에서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실속을 챙기려는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 역시 “선풍기 기술은 몇 년 사이에 큰 변화가 없는 편”이라고 말하는 만큼, 이월상품은 예산을 절약하면서도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숨은 보석 같은 존재다.
침실에서 사용할 선풍기를 고른다면, 소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밤새도록 틀어두어도 수면을 방해하지 않아야 하기에, BLDC 모터가 장착된 모델이나 초미풍 모드가 있는 제품이 적합하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바람을 지속적으로 보내주기 때문에 장시간 켜놓아도 부담이 없다.
전력 소비량도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요소다. 일반 가정용 선풍기의 경우 42~55W 정도의 소비 전력이 적절하며, 제품에 표시된 W 수치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 등급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똑같은 가격의 선풍기라 해도 1등급 제품은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을 줄이는 데 훨씬 유리하므로, 구매 전 라벨 확인은 필수다.
그리고 간혹 사소하게 여겨지는 부가기능이 실사용에서 만족도를 크게 좌우하기도 한다. 리모컨 조작은 물론, 회전 범위 지정, 타이머 설정, 스마트폰 앱 연동, 무선 충전 도크 같은 기능들은 실제로 사용해보면 그 편리함을 체감하게 된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라면 외출 중에도 선풍기를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앱 연동 기능은 무척 유용하다.
무선 선풍기는 이동성과 인테리어 측면에서는 장점이 많지만, 배터리 충전의 번거로움이나 지속 시간의 제약이 있을 수 있으니, 평소 사용 패턴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선풍기를 고르는 일은 단순히 바람을 만드는 기계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여름을 어떻게 견디고 싶은지를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감성보다는 실속을, 디자인보다는 구조와 성능을 먼저 본다면, 올여름 당신의 하루는 한층 더 시원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바람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고른 선풍기가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