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Oct 19. 2021

아무튼, 필사

  몇 년 전부터 내 새해 목표에 책 100권 읽기가 있었다. 딱 떨어지는 숫자 100이 목표로 삼기 좋은 숫자 같았다. 96권이나 97권 읽기를 목표로 삼기엔 조금 어색하다. 곰은 100일 동안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 아기는 태어나면 ‘100일의 기적’이라 해서 그즈음 되면 잠을 길게 잔다고 한다. 초보 엄마였던 나는 좀비 같은 몰골로 그 기적의 100일을 기다렸지만, 누구나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말을 몰랐으면 했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어쨌든 곰이 인간도 되고 아기들이 기적도 일으킨다는 100이란 숫자는 목표로 삼기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좋은 숫자다.


  그간 한결같이 목표 100권은 달성하지 못했다. 72권, 82권, 81권.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지만 100을 채우기엔 많이 부족했다. 가끔 독서 슬럼프가 찾아와 한동안 책을 손에 잡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100권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결과보다는 열심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2021년 올해 처음으로 100권을 읽었다. 올해는 학교를 안 가니 물리적 시간이 많다. 마음먹으면 하루 종일 조용히 책만 읽을 수도 있다. 쌓여가는 빨래와 설거지를 못 본 척해야 한다. 그건 자신 있다. 소설, 독서와 글쓰기, 고전, 미생물, 우주 등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주로 읽는다. 독서 모임(책수다)이나 글쓰기 모임 회원분들의 추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책을 읽을 때는 즐겁고 편안하다. 책 속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것이 좋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 좋다’라는 단순한 감정만 떠오른다.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독서 모임에는 선정된 책을 읽고 참여하지만, 막상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 난감할 때가 많았다. 내용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책을 2번 읽고 모임에 참가하기도 했다.

 





  내 기억력을 보조할 장치가 필요해 필사를 시작했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책을 다 읽고 밑줄 그은 문장을 다시 읽어 본다. 그중 필사하고 싶은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는다.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번에 필사할 때도 있고, 읽기와 필사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그림도 그린다. 글에서 묘사하는 풍경, 물건 같은 것을 먼저 머릿속에 그려본 후에 노트에 옮겨 표현한다. 천문학과 미생물 이야기를 좋아해서 행성과 우주선, 미생물을 많이 그렸다. 실력이 형편없어 나중에 다시 보면 피식 댈 수 있다는 예상 밖의 효과가 있다.


  필기구는 2가지를 사용한다. 스테들러 노리스 점보 샤프 (1.3mm)와 자바 제트라인(0.38mm)이다. 스테들러 노리스 점보 샤프는 심이 두껍고 부드러워 책에 밑줄을 긋는 용도로 쓰기 좋다. 자바 제트라인 볼펜은 글씨가 얇고 예쁘게 잘 써진다. 볼펜 똥이 잘 나오지 않아 신기하다. 이 볼펜은 독서 모임의 *슬 선생님이 제트스트림 볼펜 대용으로 너무 좋다며 선물해 줬는데 그 후로 쭉 잘 쓰고 있다. 어떤 분야든 장비 욕심은 별로 없어 가리지 않지만 제트라인 볼펜만은 고집한다.

  

  필사 공책은 다이소의 라인 노트다. 28줄로 되어 있다. 한 줄의 폭이 내 글자 크기와 잘 맞아 글씨 쓸 때 부담이 없다. 종이의 두께도 적당히 얇아 제트라인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공책에 작은 굴곡을 만들어 준다. 한 글자, 한 글자가 퀼트로 만든 이불의 바느질 땀 같다.

  

  퀼트로 아기용 누빔 패드를 만든 적이 있다. 퀸사이즈 이불을 만들겠다는 거대한 목표로 퀼트를 시작했다. 세월은 1년, 2년 흘렀고, 바늘이 손가락을 셀 수 없이 찔렀다. 장차 퀼트 이불이 될 그것은 미완성 상태로 장롱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내가 무얼 만들고 있는지도 가물가물해진 순간 눈을 떠보니 아기용 이불만큼 커져 있었다(작아져 있는 걸지도). 그래서 그것은 아기용 누빔 패드라 불리게 되었고 그렇게 사용되었다. 누빔 패드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는 것이 좋았다. 한 땀 한 땀 긴 세월 손가락을 수 없이 찔려가며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필사도 그렇다. 종이에 새겨진 그 굴곡들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만지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갔던 내 시간과 노력을 느껴본다. 뿌듯하다. 

  

  필사를 위해 글씨체도 바꿨다. 편하게 비스듬히 쓰던 글씨를 바꿔보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마음에 드는 무료 손글씨 교본을 찾아 연습했다. 그리고 천천히 글씨체를 바꿔나갔다. 처음에는 글씨가 익숙지 않아 힘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손에 익은 내 습관을 버리고 보이는 선대로 쓰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 모임의 *욱 선생님이 내 글씨를 보고 “어린애가 어른 글씨 따라 쓴 것 같아요.”라고 직언을 날렸다. 뼈를 때리는 직언은 좋았고, 귀를 팔랑이며 포기할까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완벽하지만 따라 쓰기는 어려운 인터넷 손글씨가 원래 내 글씨와 타협을 이뤄가며 모양이 조금씩 변해갔다. 그렇게 조금 개선된 나만의 손글씨가 만들어졌다.


  




  가끔 읽었던 책을 시간이 지나 다시 읽기도 한다. 좋아하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2019년 12월과 올해 9월에 읽었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즐거웠던 한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때 나의 눈앞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연인이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올해 9월에 마음에 와닿았던 필사 문장이다. 문득 2019년의 나는 어떤 문장에 마음을 주었을까 궁금해져 그때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여행과 생활>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2019년의 나와 2021년의 나는 다른 문장을 기억하려 했다. 그 문장에는 지나간 나의 소중한 인연과 연인이 있다. 난 이렇게 그리움이 많은 사람인가. 미련이 많은 사람인가. 필사의 묘한 매력.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필사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곽재식 작가는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글을 베껴 쓰기만 하는 일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그런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도 뭔가를 손으로 쓰고 있으니까 마치 열심히 무언가를 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 필사의 나쁜 점”이라고 했다. 그 책을 읽으며 유일하게 필사 한 문장이다. 역시 뼈를 때린다. 이쯤에서 난 순살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필사하며 경계해야 하는 1순위다. 뇌는 멈춰있고 손만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책을 읽다가도 집중력을 잠시 놓치면 글씨만 읽게 되는 순간이 있듯이, 필사할 때도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경계해야 한다지만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난데. 그냥 쓴다. 그렇게 써두니 이리 다시 찾아 읽고, 인용도 할 수 있으니 그리 의미 없지도 않겠다.  







  무루 작가의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위로가 되었던 문장이 있다. 작가는 참 여러 가지로 삽질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이게 다 쓸데없는 짓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동안에도 사는 게 꽤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계속 생겨났고, 오래된 삽질의 결과로 뜻밖의 기회들이 속속 찾아왔다. 다시 덮은 구덩이 곳곳에 어떤 씨앗들이 나도 모르게 심어졌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증명할 길은 없으나 분명 오래전 내가 판 구덩이에서 난 싹임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뭔가 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누가 뭐라든 필사는 그냥 내 삽질이다. 삽질을 하다 보니 소울 메이트 같은 좋은 볼펜과 노트를 만났고 글씨체도 바꿨다. 필사 문장 안에 숨겨뒀던 내 마음도 읽었다. 그리고 그 삽질의 결과로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을 쓰고 싶다는 싹이 구덩이에서 터져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싹이 나와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잘 키울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신에게 아직 행운이 남아 있사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