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 당첨 이야기
경품에 당첨된 적이 있다. 그 시작은 2003년 라디오 사연이었다. 여름 방학 동안 이현우의 음악 앨범 라디오 프로그램에 푹 빠져 살았었다. 개학 후 3학년 친구들 방학 과제 검사를 하는데 평소에 호기심 많고 귀여운 남학생이 아빠랑 산에 드라큘라를 찾으러 갔다 왔다는 일기가 너무 재미있어 사연으로 보냈고 화장품 세트를 받았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반 학생 이야기인데 내가 허락도 없이 그 이야기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으니 저작권 침해. 아무튼 조용히 무덤까지 가져가야 하는데 글로 이렇게 남겼버렸다. 철컥 철컥.
다음 경품도 현우 오라버니네서 받았다. 키가 작은 나는 학교에서 항상 굽 높은 실내화를 신는다. 높은 굽 덕분에 계단에서 구른 적도 있었지만, 그 굽에서는 도저히 내려올 수가 없었다.(굽이 없으면 학생들 사이에 푹 파묻혀 나의 존재감이 없다.) 퇴근 준비를 하다가 문 앞에서 발이 굽에서 미끄러지면서 '뚝'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뭔가 이대로 그냥 집으로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학교 근처 정형외과까지 가는데 발이 너무 아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와중에 길에서 학부모님을 만나 상담도 했다. 솔직히 너무 아파서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발등뼈에 금이 갔고 깁스를 해야 했다.
그때 살았던 행당역 근처 아파트는 단지 내에도 언덕이 심했다. 출근길에 목발을 짚고 택시를 타러 큰길까지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심지어 장마철까지 겹쳤다. 목발 짚고, 우산 쓰고, 빗길에 아파트 단지 언덕을 내려갈 생각을 하니, 심란하고 서럽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이 눈물 젖은 사연으로 항아리 고추장을 받았다. 고추장으로 떡볶이 많이 해 먹었다.
국립국악원의 연수 "우리 음악 이해하기" 후기 작성 이벤트에도 당첨됐다. 대학 신입생 때 사물놀이를 배우고 싶어 동아리방으로 찾아갔다. 동아리방 문을 여는 순간 아 ~ 막걸리와 장구가 콜라보되며 풍기는 묘한 냄새. 딱 한 발자국 들어갔다 다시 조용히 나왔다.
그때 배우지 못했던 사물놀이가 너무 아쉬웠다. 발령을 받은 후에는 방학마다 '전통타악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연수를 쫓아다니며 좋아하는 장구를 실컷 쳤다.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눈뜨고 장구 치고, 밥 먹고 장구 치고, 또 밥 먹고 장구 치며 배운 적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좋아하는 풍물 연수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립국악원의 교사 연수는 학기 중 퇴근시간 이후에 진행된다. 퇴근을 하고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까지 가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런데도 그 연수는 방탄소년단 콘서트 마냥 신청자가 넘쳐난다. 다행히 선착순은 아니고 전산 추첨이라 신청하는데 여유롭다.
딸아이가 2학년이 되면서 내가 일주일에 한 번쯤 늦게 퇴근해도 아빠 퇴근 전까지 혼자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판단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오랜만에 장구채도 다시 잡았다. 소금 연주와 적성에 잘 맞지는 않지만 탈춤도 배울 수 있었다. 육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고 너무 좋아하는 장구와 너무 좋아하는 서울 야경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 9시만 되면 일찍 잠을 자는 습관이 있어 좋아하는 개그콘서트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했던 나였는데. 연수가 끝나 집에 돌아가면 10시가 넘어도 행복했다.
국립국악원 연수가 끝나고 연후 후기 작성 이벤트 안내 문자를 받았다. 이 연수는 이벤트가 아니라도 꼭 후기를 써야 하겠다는 신념으로 방문을 걸어 닫고 후기를 썼다. 그 후기가 우수로 당첨되어 Britz 블루투스 스피커를 받았다. 역시 국립국악원에서 준거라 소리가 다르다(?). 서울에는 그 '국립'자 붙은 것들이 많아 참 좋다. 블루투스 스피커로는 열심히 현우 오라버니의 음악 앨범을 듣고 있다. 현우 오라버니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어느 날 갑자기 쇼핑몰에서 이벤트에 당첨됐다며 스텐 냄비 세트를 보내온 적도 있다. 이벤트에 응모한 기억은 안 나지만 했었나 보다. 냄비 세트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에 롯데백화점에서 영수증 이벤트로 축구공 모양 MP3플레이어를 받았었다. ‘그런 영수증 이벤트에서 당첨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미 쓰던 MP3플레이어가 있어 잘 쓰지는 않았다.
얼마 전 교직원공제회 도서 증정 행사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스 24 장바구니에 한 달도 넘게 담겨 있었던 바로 그 책, 《공정하다는 착각》이었다. 다른 책을 주문할 때마다 같이 주문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 미뤄뒀던 책인데 당첨되었다니 너무 좋다. 이벤트에 응모하고 나서 응모했었다는 것도 잊을 때쯤 오는 당첨 문자는 나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 읽고 싶었던 책이라 좋고 공짜라 더 좋다.
최근에는 서울책보고에 갔다가 "행운엽서티켓 이벤트"가 있어 응모했다. 추첨으로 랜덤박스를 선물로 주는 이벤트였다. 그 랜덤박스 안에는 서울책보고에 전시되었던 2019 세종 도서가 들어있다. 설문을 작성하고 이벤트 엽서를 살짝 구부렸다. 어디선가 그렇게 살짝 구부려 넣으면 당첨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랜덤 도서 증정에 당첨되었다. 빨간색 표지의 《동방의 부름-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책이었다. 음... 꼭 읽어야지. 음... 읽을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