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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Oct 25. 2021

예민한 아이를 키웠습니다.(1)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운다. 한 명만 낳아 기르고 있다. 이 세상에 예민하지 않은 아기가 존재할까? 잠 자기, 모유 떼기, 젖병 떼기, 이유식 먹기, 밥 먹기 등 아기들이 발달 단계에 따라 산을 하나하나 넘듯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다. 우리 딸은 그 과업을 이루는 동안 매번 극도의 예민함을 보여주는 아기였다. 잠도 잘 못 자고, 분유와 이유식, 밥도 잘 못 먹는 이런 아이가 커서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걱정했다. 감사하게도 4학년 언니가 된 지금은 그 예민함이 많이 사그라들어 내가 좀 살만하다. 초예민했던 아기도 크면 그냥 그냥 무난한 언니가 된다. 그때 그걸 알았더라면 마음을 조금 덜 졸였을 것이다.






   낮 동안은 굉장히 활발하고, 잘 웃고, 똘똘하다. 자기의 모든 능력을 펼쳐 보여주며 1년 365일 낮 동안 계속 학예 발표회 같은 삶을 살았다. 깔깔대고, 뛰어다니고, 빙글 돌고, 춤추고, 말하고... 흥분에 휩싸인 낮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밤이 찾아온다. 어둠과 함께 내 불안도 시작된다. 잠을 잘 못 자는 아이다. 계속 울었다. 울다 잠들고, 다시 새벽에 또 깨서 울기를 반복했다.


  내가 다음 날 출근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아기는 알리가 없다. 나 혼자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한다. 새벽에 우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행당동에서 응봉동, 금호동을 차로 돌며 재우기도 했다. 차 시동을 걸면 우는 아기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그렇게 동네를 3~4바퀴를 돌면 잠이 들었다. 그때 차에서 반복해서 들었던 하와이 가수 이즈라엘 카마카위올레(Israel Kamakawiwo'ole)의  '히일라웨(Hi'ilawe)'를 잊을 수가 없다. 목소리가 굵고, 낮고, 감미롭다. 자장가로 너무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아기의 울음소리에 불안해진 내 마음에 더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딸에게 이 음악을 기억하는지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다. 내 마음에만 사무친 노래인가 보다.


  집에 손님이 오는 날에는 낮에 더 흥분했고 그러면 밤에는 더 힘들어진다. 첫째 언니네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이모와 사촌 언니, 오빠를 만나 낮에는 너무 즐거웠다. 신나게 깔깔대고 놀았다. 역시나 밤이 되니 울기 시작했다. 너무 울어 아기띠로 안고 주차장에 내려왔다.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겨울이라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우는 아기를 안고 시동도 걸리지 않는 자동차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한숨만 나왔다.


  4살 되던 해  어떤 날엔 밤에 잠을 자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주름 빨대를 사러 가야 한다고 했다. 다다다다 달려 현관문으로 돌진했다. 현관문에 '쾅' 부딪혀 다치지 않을지 걱정이 될 만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두 팔을 움켜 잡고 지금은 새벽이라 마트 문이 닫혀 빨대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가자고 설득하지만 새벽에 깬 아이는 이성을 찾지 못했다. 혼내보고 달래 보았지만,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며 울고 떼쓰는 딸을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새벽 3시에 딸아이 손을 잡고 행당역 롯데마트 앞까지 갔다. 출근하는 듯한 사람들도 한 두 명 보였지만, 새벽의 아파트 단지는 조용하고 무서웠다. 문이 굳게 닫힌 마트를 확인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난 하나뿐인 딸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솔직히 잠투정은 너무 힘들었다. 진저리 나는 잠투정이었다. 육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우울증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무서워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꿈에 중년 여배우가 나왔다. 그 여배우가 내 꿈속에서 자살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했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 끔찍한 모습이 나인 것 같았다.       





  딸이 5살이 되었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내가 어린이집에 보내며 케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그만두신 후 딸은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떼쓰기 시작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안 간다고 울며불며 길에 드러누웠다. 아이의 옷을 잡아 질질 끌고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했다. 도저히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언니의 권유로 아기발달연구소라는 곳에 찾아갔다. 박사님의 "아이 키우는 거 쉽지 않아요."라는 첫마디에 눈물 콧물 쏟아냈다.  

 

  아이와 나는 다른 공간에서 각각 발달검사와 상담을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에게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00는 나가 있어~"라는 박사님의 높고 단호한 목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동안 우리 딸은 단호하지 않고 말랑말랑한 엄마의 말만 가려서 듣지 않고 있었던 거다. 발달검사 결과 또래 집단의 평균보다 언어 지능이 높았고, 어머니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는 행동을 강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단호한 태도로 양육하면 아이의 행동 수정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도 했다. 단호함. 그것이 부족했던 거였다.


  육아서를 한참 읽었고, 그곳에서 하라는 대로 다정하게, 안 되는 이유와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왔다. 다 집어치워야 했다. 박사님께서 그렇게 설명하지 말라고 지겹다고 했다. 맞다. 지겨웠을 거다. 조금씩 단호해지는 연습을 했다. 사람 고쳐 쓰지 못한다지만 나를 어디 갖다 버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 조금 고쳐 써보려 노력했다. 육아서에 나오는 아이는 우리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니 그 아이에 맞게 키워야 했다. 육아서가 정답은 아니었다.


  임용고사 면접에 나온 문제가 생각난다. '읽었던 책 중에 예비교사로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책은 무엇이었나요?' 대충 이런 문제였다. 그 문제에 일본의 궁궐 목수가 쓴《나무에게 배운다》라는 책 이야기를 했다. 시험기간에는 평소에 읽지 않던 책이 그렇게 재밌어진다. 임용고사를 코앞에 두고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딱 면접 문제에 운명같이 맞아떨어졌다. 사찰이나 궁전 같은 큰 건물을 짓는 그 책의 작가는 나무도 사람처럼 다 다르다고 했다. 나무들이 자라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다루어야 하고 또, 그 특징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 똑같이 자르고 눌러 합판으로 만들어 쓴다면 나중에 그 나무들이 제 성질을 드러내려 해서 건물도 틀어지고 휘어지는 거라고. 나무처럼 아이들도 그들이 자라난 환경이 다르니 각각의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면접에서 답은 잘했다. 그 목수의 지혜를 내 인생에, 내 딸에게는 적용하지는 못했다.






  상담 후로 나도 조금씩 달라졌고, 딸도 커가며 조금씩 달라졌다. 가끔 말릴 수 없이 떼를 쓸 때마다 엄마는 아직 어리다고 조금 더 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아이를 넷이나 낳고 키우셨으니 맞는 말일 것 같다. 크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괜찮아지는 날이 있긴 있을 거니까. 딸아이의 떼를 조금은 단호하게 받아내면서 한편으로는 '아직 어리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를 수없이 되뇌었다.


  밤마다 집에서는 전쟁을 치렀지만 다행히 아침이면 출근을 했다. 힐링인 듯 출근인 듯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인고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아이는 11살이 되었다. 이제는 내가 안아 주지 않아도 사람처럼 누워서 잠을 잔다. 아직도 난 침대에 혼자 누워 잠들고, 아침에 울지 않고 일어나는 딸아이를 볼 때마다 신기하다. 크면 괜찮아진다. 정말로 괜찮아진다.


  더원이 부른 '지나간다'. 육아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던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감사하고 감사한 노래다.   


  감기가 언젠간 낫듯이

  열이 나면 언젠간 식듯이

  감기처럼 춥고

  열이 나는 내가 언젠간 나을 거라 믿는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듯

  장맛비도 항상 끝이 있듯

  내 가슴에 부는 추운 비바람도

  언젠간 끝날 걸 믿는다.


  얼마나 아프고 아파야 끝이 날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울어야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지나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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