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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03. 2021

엄마와 저는 갑상선암 환자입니다.(1)

  

  올해 8월 엄마가 서울에서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검진 결과 갑상선에 혹이 있어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정밀 검사 날 둘째 언니와 엄마를 모시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엄마는 “너 영 휴가 내불민 수업은 누게가 햄시니? 교감 선생님이 허느냐~?(너 이렇게 휴가 내면 수업은 누가 하니? 교감 선생님이 하시니?)” 하며 걱정하셨다. 난 갑상선암 수술 후 질병 휴직을 하고 있지만, 엄마에겐 말씀드리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제사를 준비하는 엄마를 도와드린다고 제주도에 갔을 때도 연가를 냈다고 알고 계신다. 올해 들어 자주 연가를 낸다고만 생각하신다. 사실 다른 직장인에 비해 교사는 학기 중에 연가를 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엄마는 잘 모르신다. "교감 선생님은 수업 안 하셔. 우리 반에 강사님 오셨어." 또 거짓말이다. 엄마는 제주도에, 나는 육지에 멀리 떨어져 살아서 할 수 있는 거짓말이다.     


  갑상선 세침검사(작은 주사기를 이용하여 갑상선 결절 안의 세포를 흡입한 뒤 현미경을 통해 모양을 확인하는 검사)를 하기 전에 상담실에서 엄마에게 가족 중 갑상선 수술을 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없다고 하셨고, 난 문밖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상담실에서 나오시고 나는 혼자 잠시 상담실로 들어갔다. “제가 딸인데요. 갑상선암 수술받았어요. 엄마는 모르세요.” 눈물을 꾹 참았다. 코끝이 빨개지고 목에 메어왔지만 이제 와서, 엄마의 갑상선 조직 검사를 앞둔 이 타이밍에 울 수는 없다. 검사를 앞두고 긴장하신 엄마는 상담실에서 나오며 눈물을 참는 내 어색한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셨다.


  검사 후 엄마는 혼자 제주도로 내려가셨다. 2주 후 나온 검사 결과는 보호자인 남동생이 먼저 들었다. 갑상선암이고, 임파선 전이가 있다. 앞으로 엄마도 내가 겪은 일들을 똑같이 겪으시겠지. 갑상선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이 나겠지. 수술로 갑상선과 임파선 일부를 제거하고, 목에는 쉽사리 가려지지 않는 흉터가 남겠지. 매일 눈을 뜨면 갑상선 호르몬 약을 먹고, 수술 두 달 후엔 저요오드식을 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수술로 제거하지 못한 미세 전이 병변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겠지. 때때로 눈물을 더 흘리실 테고, 착한 암이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100번 정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시겠지.


  엄마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드려야 하는데 옆에 아무도 안 계셔 걱정이다. 자식들을 다 육지에 나와 살고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첫째 언니가 전화로 엄마에게 검사 결과와 앞으로의 일정을 전했다. 수술하면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걱정하실 거다. 근처에 살며 자주 왕래하는 외숙모께 말씀드리고 오늘 잠시 엄마에게 들러줄 수 있으신지 부탁드렸다.      


  그 밤 엄마는 늦게까지 방에 불을 켜놓으셨다. 걱정되는 마음에 선뜻 잠들지 못하셨다. 덩그런 방에 TV를 켜놓고 혼자 누워 계셨을 모습이 그려진다. 앞집 *정 언니네 엄마가 늦도록 환하게 켜진 우리 집 안방을 보시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파자마 바람으로 찾아오셨다. 엄마가 괜찮은지 무슨 일 없는지. 오신 김에 말썽 부리는 남편과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 이야기를 잔뜩 하시고 가셨단다. 다른 때라면 우리 집 안방에 불 켜 놓은 것까지 그렇게 볼 일인가 싶었겠지만, 마음 따뜻해지고 감사해지는 일이다. 엄마는 제주도에 혼자 계신 게 아니다.      


                      <어떤 품앗이>  
                                                       박성우


구복리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한천댁과 청동댁이 구복리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구년 뒤, 한천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청동댁이 한천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다시 십일년 뒤, 청동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한천댁이 청동댁 집으로 가서 몇날 며칠 자줬다

연속극 켜놓고 간간이 얘기하다 자는 게 전부라고들 했다

자식새끼들 후다닥 왔다 후다닥 가는 명절 뒤 밤에도
이 별스런 품앗이는 소쩍새 울음처럼 이어지곤 하는데,

구복리댁은 울 큰어매고 청동댁은 내 친구 수열이 어매고
한천댁은 울 어매다

             





  명절에 후다닥 왔다 가는 나 같은 자식새끼에게 어떤 품앗이는 나 대신, 언니 대신, 남동생 대신, 아빠 대신이다. 


  끝까지 내 비밀을 지킬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엄마, 나도 갑상선암 수술 받안. 지금은 괜찮아~ " 울지 않고 이야기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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