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Nov 09. 2021

엄마와 저는 갑상선암 환자입니다. (2)

  


  엄마가 걱정 없이 편하게 웃기만 하셨으면 했지만 더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올해 1월 학년말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난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이라는 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우리 엄마였지만 엄마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슬픔과 허전함, 막막함에 잠겨 계신 엄마에게 그런 소식까지 전할  없었다.  





  

  내가 수술을 받는 날 엄마는 서울에 계셨다. 방학이라 학교와 유치원에 가지 않는 어린 손자, 손녀를 봐주신다고 남동생 집에서 지내고 계셨다. "누나, 엄마가 누나 방학했는데 바쁘냐고 물어보신다." 액션을 취하라는 남동생의 전화였다.


  학기말 방학 다음날 바로 입원을 해서 엄마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병원 입원 전에 누구를 만나는 게 걱정스럽기도 했다. 수술하면 한참 못 볼 테니 수술 전에 전화드렸다. 음 해보는 부장 업무가 너무 바빠서 방학에도 매일 출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언니들과 남동생, 올케까지 모두 거짓말에 동참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수술 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종양의 위치에 따라 성대 신경에 손상을 입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진다고 했다. 간병해주는 남편과는 핸드폰 메모장으로 대화했다. '사과, 딸기, 플레인 요거트 먹고 싶어. 얼굴 닦게 손수건에 물 좀 적셔줘. 옆자리 환자 보호자분한테도 커피 한 잔 드려' 이런 말들이 메모장에 저장돼 있다.


  퇴원 후 목에서 소리가 나올 때쯤 엄마께 전화드렸다. 목소리가 안 좋다며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셨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고, 비염도 있어 평소에도 종종 그랬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도 딱히 이상하지 않았고 적당히 둘러댈 수 있다. 그렇게 적당히 적당히 둘러대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엄마가 갑상선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솔직히 말하는 게 더 위로가 될 거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내 주변에 갑상선 수술을 받으신 선생님들이 몇 분 계셨다. 나도 수술 전에 그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받았었다. 그분들 모두 지금은 건강하시고, 배드민턴, 골프, 자전거 등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육아도 하시며 잘 지내고 계셔서 안심이 되었다.


  엄마의 생신을 핑계로 제주도에 갔다. 일단은 또 연가를 낸 것으로 해뒀다. 내 얘기를 언제 해야 할까. 언제가 가장 좋은 타이밍일까. 내 수술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집 근처에서 전복뚝배기를 맛있게 먹고 밤길을 걸어 집에 들어왔다. 제주도 음식, 밤하늘, 공기 냄새, 바람 소리. 육지에 있는 나와 제주도에 있는 나는 다른 사람 같다. 제주도에서는 느리게 걷고, 주변을 돌아보고, 멀리 본다.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계신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 수술하는 거 걱정되지?"


"걱정되지."  


"엄마, 사실은 나도 갑상선 수술핸. 그래서 지금 학교 안 가."


"뭐? 언제?"


"올해 1월"


"그때 나 서울 이신 때 아니냐?(그때 나 서울에 있을 때 아니니?)"

"너 겅행 목소리 안 나와시냐?(너 그래서 목소리 안 나왔니?)

"언니영 다 알암시냐?(언니랑 다들 알고 있니?)

"너 게민 목에 손수건 계속 행 댕긴 것도 그것 때문이냐?(너 그럼 목에 손수건 계속하고 다닌 것도 그것 때문이니?)






  엄마는 나에게, 혹은 엄마 자신에게 조금은 화가 난 표정으로 계속 그때를 복기하셨다.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말에 답하며 어느새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내가 걱정 없이, 슬픔 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됐던 우리 학교 선생님들처럼, 나도 우리 엄마에서 힘을 드리고 싶었다. 


  "엄마 난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수술이 돼 있더라고. 수술하고 나서 운동도 하고, 지난번엔 밭에서 검질(잡초)도 완전 열심히 멨잖아. 나 글도 쓰고, 재밌게 잘 살고 있어. 엄마도 수술하면 괜찮을 거니까 힘내. 내 걱정은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저는 갑상선암 환자입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