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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23. 2021

마카롱으로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한밤중 달빛 식당》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달빛 식당에서는 돈 대신 나쁜 기억을 내면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남동생이 갑자기 마카롱 모바일 상품권을 선물했다. 동화책 이야기처럼 마카롱을 먹으면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남동생과는 2살 차이가 난다. 내가 3학년이 될 때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걸어 10분 남짓 되는 등굣길을 내가 데리고 다녔다. 동생은 아침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울어 젖혔다. 3학년 어린이에게는 동생을 어르고 달래며 데리고 가야 하는 등굣길이 너무 멀고 힘겨웠다. 길바닥에서 우는 동생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같이 울던 날도 있었다.


  울며 안 가겠다는 동생 놈을 무사히 교문 안으로 끌고 와서 들여보내고, 나도 교실로 들어가며 '오늘도 무사히 등교했다, 산을 하나 넘었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한 번은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너희 동생은 왜 그렇게 매일 우니?”라고 물어보기도 하셨다. 나도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동생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가 있었을 거다.


  고등학생  엄마, 동생과 식탁에 마주 앉아 초등학교 시절 힘들게 등교하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온 적이 있었다.  안에 있는, 등굣길이 서러웠던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터져 나온  눈물에 동생도 당황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날 울고,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후로 가끔 동생을 놀리느라 학교   맨날 울었다고 얘기는 했지만  이상  마음이 힘들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얼마  동생이 마카롱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왔다(아마 착한 올케가 옆에서 시켰을 거다). ‘아무 날도 아닌데 ?’ 동생은 동생을 닮은 아들을 낳았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들을 등원시키고 나한테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들을 등원시키며 어렵고 힘들었을 마음을 알겠으니 동생과 올케가  안쓰러웠다. 사실 '너도 겪어보니 이제  마음 알겠지?' 하는 생각도 조금 있었다.       

 



  


   기억은 동화책 이야기처럼 마카롱을 먹었다고 잊을 수는 없다. 말했고, 한바탕 울었고, 사과를 받아서 괜찮아졌다. 상처에 후시딘을 바른 것처럼 괜찮아졌다. 무거운 기억과 감정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털어내지 못한  끌어안고 있다면 너무 버거울 거다. 감정을 말로 하는  어렵지만  힘든  내가 해냈다. 잊진 못하지만 이제 괜찮으니 됐다. 보내준 마카롱은  먹었다. 그러니 동생, 이제 그만 미안해해도 된다.



*그림출처: 이분희 글. 윤태규 그림, 《한밤중 달빛 식당》,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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