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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01. 2021

조인성의 순간

첫눈에 반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내 마음속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바닥을 보며 걷다 고개를 들었는데 앞에서 한 학년 위 남자 선배가 걸어오고 있었다. 길에서든 학교에서든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쳐본 적 없는 선배였다.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작고 학생수도 적어 전에도 어쩌면 몇 번 마주쳤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 순간은 처음이었다. 난데없이 그 선배가 슬로비디오처럼 걸어왔고 그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나의 뇌 어느 구석에서 다른 뉴런들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었던 선배의 이름과 다니고 있는 대학교…이런 정보들이 빛의 속도로 활성화되고 연결되며 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 안에서 어떤 생화학 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리 없는 선배는 내 옆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터미널에서 교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았지만 방금 전 느꼈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던 그 선배가 내가 탄 버스에 올라탔다. 분명 반대 방향으로 스쳐 지나갔는데 다시 돌아와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학교까지 가는 내내 저 선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지만 나와 멀리 떨어진 창가 자리에 앉은 선배 얼굴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선배에게 말을 걸어 볼 핑계도 없고, 용기도 없었다. 그 찰나를 뭐라 불러야 할까. 내가 그 선배에게 첫눈에 반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선배가 내 마음속에 '훅'하고 들어 온건 맞다. 마음속에 그 선배의 작은 방이 생겼다.


  그 선배와 운명 같은 순간이 한 번 더 있었다. 선배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다. 방학 때 친구를 만나러 잠시 우리 학교를 들렀던 것 같다. 학생회관 건물 1층에서 친구와 함께 있는 그 선배를 마주쳤다. 두 번째 마주치는 순간은 슬로비디오는 아니었다. 그 선배가 지금 우리 학교에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긴가민가 하며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뒤에서 날 불렀다. "내 친구가 너 알겠대!" 내 시공간을 멈춰 세웠던 그 선배가 맞았다. 선배의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고 나는 "네~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만 하고 뒤돌아 뛰어갔다. 가슴은 터질 것 같았지만 다음 말을 건넬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그 순간을 그냥 예쁜 기억으로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두 번의 운명 같은 순간이 지나갔다. 그 후로 선배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졸업을 하고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동학년 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천호동을 지나는데 와글와글 검정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성들이 있었다. 똑같은 검정 양복 무리 중에 딱 한 명이 빛을 발하며 서 있었다. 살짝 미소 짓는 조인성이 내 눈에, 마음에 '훅' 들어와 박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영화 '비열한 거리'를 촬영 중이었다. 조인성은 그 전에도 알고 있었고 존재하고 있었지만, 딱 그 찰나에 나에게 와 내 마음에서 조인성이 되었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아" 감탄사는 살면서 딱 한 번 더 해봤는데 내가 24시간 진통 끝에 우리 딸을 처음으로 가슴에 안았을 때였다. 엄청난 감동의 순간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아아"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다. 멋없다.






  '조인성의 순간'이다. 누군가, 무언가 갑자기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멋대로 방을 만들어 차지하는 순간을 그렇게 부를 수 있겠다. 세 번째 '조인성의 순간'을 불러온 것은 물건이었다. 딸이 7살이 되면서 우리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척 집에서 1년을 함께 지냈다. 그곳에서도 딸은 한국에서 배우고 있던 피겨스케이트를 계속 배웠다. 딸과 피겨스케이트를 같이 배우던 친구의 엄마 손목에서 조용히 빛나던 애플 와치가 캐나다에서 '조인성의 순간'을 소환했다.


  그 엄마는 세련된 스타일의 조용조용 지적인 엄마였다. 아이들이 스케이트 수업을 할 때 관중석의 학부모는 아이가 넘어지면 같이 넘어지는 듯 움찔거리며 안절부절 안타까워한다. 캐나다에도 열혈 학부모가 있어서 링크에서 수업 중인 자기 아이를 향해 "다리를 더 밀며 타야지~"하며 간섭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학부모들 가운데 그 지적인 엄마는 꼿꼿한 자세로 지켜보는 내내 미동이 없다. 조용히 지켜보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로 칭찬의 말을 건넨다.       


  닮고 싶은  엄마의 손목에 애플 워치가 있었다. 시계는 손목의 주인과 잘 어울렸다. 디자인이 세련되면서도 튀지 않고 지적인 느낌이 좋았다. 전에도 애플 워치는 항상 존재했지만 크게 관심 없었다가  순간에  마음으로 들어와 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나를 노예로 만들었다.


   '조인성의 순간'을 불러왔던 선배나 조인성은 내가 가질 수 없지만 애플 워치는 가질 수 있다. 애플 워치를 사야 하는 뒷받침 문장들이 필요했다. 아무 이유 없이 시계를 사는 건 나름 미니멀을 추구하는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걸 사야 할 이유(핑곗거리)가 필요했다. 세상엔 예쁘기 만한 쓰레기들이 많지만 애플 워치는 예쁘기도 하면서 유용한 기능이 많은 아이다. 사실 그 기능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대외적으로(특히 남편에게) 애플 워치를 사야 하는 타당한 뒷받침 문장이 되어주었다.






  사실 나의 최애 배우는 강동원이다. 죽기 전에 강동원님을 실물로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선생님! 오늘 공개수업에는 저희 삼촌이 오신대요." 알고 보니 그 삼촌은 강동원! 저 멀리 운동장을 가로질러 강동원이 걸어온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로망이 있다.


  어쨌든 '조인성의 순간'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순간들이 내 인생에 있다. 흘러가는 내 시간을 딱 붙잡아 묶어 마디를 만들어주는 작은 축제 같은 사건들. 허락은 하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사부작사부작 작은 행복을 만들어 주는 아이들이다.


  시간이 더 흘러 멋진 할머니가 되면(아! 나이 먹는다고 멋져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지금 멋있어야 늙어서도 멋있다고), 서귀포 세연교 방파제에 앉아 내 인생 축제 같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거다. 옆에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가족이든, 친구든. 강동원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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