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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Oct 30. 2021

돌에 당첨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돌 맞은 제주도 김씨 이야기

  두 살 어린 남동생과 미친 듯이 싸우면서 컸다. 동생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를 내 인생에 가장 폭력이 난무했던 암흑의 시대라 부를 수 있겠다. 중학생이 된 동생은 힘이 센 인간(!)이 되었다. 더 이상 힘으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아주 다행히 그 녀석은 말이 통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가끔 아빠가 드시다 식탁 위에 남겨둔 한라산(소주)을 몰래 한 모금씩 나누며 고민도 나누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항상 바닥을 기는 성적이라 아무도 예상 못했지만 반전(기적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이 있었던 동생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 했고, 나보다 먼저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발령을 받아 막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퇴근 후 동생과 종종 대학로나 종로 등지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동생은 좁고 복잡한 길에서 나처럼 두리번거리지도 않았고, 사람들에 치이지도 않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촌스럽긴 했지만 뭔가 서울에 차분하게 적응한 듯 보였다. 





  그날도 동생과 대학로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갑자기 ‘펑!’하는 큰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가 탄 버스가 급정거했다. 버스 오른쪽 커다란 유리창이 완전히 깨졌고, 그 유리 파편에 맞아 피 흘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 나는 소리치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한해 전 미국의 무역센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던 911 테러가 머리를 스쳤다. 분명 이건 테러다. 누군가 버스를 향해 총을 쐈거나 폭탄을 던진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 기사님은 짧은 순간 고개를 돌려 먼저 승객들을 확인했다. 생사를 다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는 앞문을 열고 ‘타다다닥’ 범인을 잡기 위해 재빠르게 버스에서 내려 뛰어갔다.      

  

  버스 안 승객들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고 아무도 일어나 돌아다니거나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모두 고개만 두리번거리며 소리와 파괴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순간 내 앞 좌석 쪽 바닥에 주먹 두 개 만한 돌이 눈에 띄었다. 돌때문이었다. 버스 밖에서 누군가 돌을 던졌다. 돌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앞 자석 등받이를 잡고 있던 내 오른팔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아~ 내 팔! 팔이 안 움직여~" 눈물이 줄줄 흘렀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비명 소리,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그 충격때문에 내가 팔에 돌을 맞았다는 것도, 팔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몰랐다. 팔의 통증보다 그런 재난 같은 상황이 더 무시무시했다. 패닉 상태였지만 내 옆에 다행히 동생이 있어 날아가려는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밖에서 버스를 향해 돌을 던졌던 누군가는 후다닥 정신을 다잡고 도망갔다. 기사님은 결국 그 사람을 잡지 못했고, 나는 동생과 버스회사 관계자와 함께 가까운 응급실로 갔다. 


  타박상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의 의사 선생님은 X-ray를 찍어보시고 내 뼈가 얇다고, 몰랐던 기분 좋은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냥 가기 뭐하니 기념으로 붕대도 감아주셨다. 내가 받았던 정신적 충격, 눈물과 함께 마스카라가 줄줄 흘러내린 내 몰골에 비해 몸에 큰 부상은 없었다. 얇은 뼈에 조금 멋지게 붕대도 감았다. 경품에 당첨되듯 많은 승객 중 내가 그 돌에 당첨된 것 같았다. 병원을 나올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음날 기념으로 감은 붕대를 풀지 않고 조금 아픈척 하며 출근했다. 우리 반 학생이 내가 탤런트 김하늘 같다고 했다. 얼굴 말고, 딱 붕대만 보고 한 말이겠지만 광대가 승천했다. 그해 김하늘과 김재원이 사제지간으로 나와 사랑에 빠지는 ‘로망스’라는 드라마에서 김하늘이 팔에 깁스를 했었다(지금 자료 사진을 찾아보니 팔에 깁스를 한 사람은 김하늘이 아니라 김재원이다. 김재원 닮았다는 말을 난 김하늘로 알아들었을 수 있다). 팔의 타박상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그 아이의 김하늘 닮았다는 기분 좋은 말은 영원히 내 기억에 남았다(김재원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다). 동학년 선생님은 "남산에서 돌 던지면 김서방이 맞는다던데 정말 김 씨가 맞았다"며 신기해했다. 뭔가 나에게 위로가 되라고 하신 말씀은 아닌 듯하다. 쩝.

 

팔에 붕대 감은 김재원(2002MBC드라마로망스)

  

  나에게 날아온 그 돌의 의미는 ‘이 돌에 맞았으니, 너를 서울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인가? 아니다. 보통 누군가에게 돌을 던진다면 ‘너 집에 가!’라는 의미가 크지 않나? '안 그래도 복잡한데, 넌 왜 서울 와서 산다고 난리니? 그냥 제주도로 돌아가~!’ 그런 의미일까? 날아온 돌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뭐 오늘 뀐 방귀에서도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다. 의미 같은 건 크게 찾지 말자.


  다만 아직도 궁금한 건 돌만 던지고 도망친 그 사람이다.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 우리 한번 만납시다.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그냥 앞에 돌이 있어 던진 거라면 맞은 사람이 조금 허무하니, 뭔가 숨겨진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외다. 돌에 당첨된 그 사건은 연말에 버스회사에서 보상금으로 15만 원 남짓 받으며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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