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Oct 29. 2021

서울에서 운전을 배웠습니다.

제주에서 면허를 땄습니다.

  2002년 제주도에서 운전면허를 겨우 땄다. 겨우라고 말한 이유는 필기시험에서는 커트라인을 아슬아슬 통과했고, 기능시험, 도로 주행에서는 여러번의 도전 끝에 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남동생과 필기시험을 보며 동시에 시작했지만, 도로 주행 시험전 연수는 남동생에게 받았다. 살면서 남동생과 비교해 뭐가 뒤처져본 적은 없는데, 운전! 그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1월에 힘겹게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었지만 3월에 서울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에 면허는 곧 장롱 깊숙이 들어가 잊혔다.






  나의 로망 서울은 대중교통 시스템이 훌륭하다. 어딜 가도 지하철과 버스만 타면 불편함이 없었다. 뭐 굳이 서울에서 운전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나이를 하나 둘 먹었다. 아기를 낳고 나니 뚜벅이 생활이 불편해졌다. 육아휴직 동안 동네에서 우리딸과 비슷한 연령의 아기를 키우시는 할머니와  친구가 됐다. 아기들을 데리고 함께 홈플러스 문화센터를 다녔다. 혼자 몸이라면 걷고 버스를 타도 불편함이 없지만, 아기를 안고 버스를 타고 다니려니 어깨와 허리, 다리가 많이 힘들었다. 내내 택시를 타고 다녔다. 엄마는 우리 집 식구 다 운전하는데 왜 너만 못하냐고 하셨다. 역시 엄마는 자식들을 조금 비교하며 키워야 하는 걸가? 그 말을 듣고 나도 해볼까? 마음에 불씨가 조금 댕겨졌지만 그때는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깁스 사건'때문이다. 학교에서 신나게 퇴근 준비를 하다 높은 슬리퍼에서 발이 미끄러져 발등뼈에 금이 갔고 깁스를 해야 했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아파트 단지 언덕을 내려가고, 버스에 오르고... 출퇴근하는 일련의 과정은 상상만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친 쪽이 왼쪽 발이라 운전만 할 수 있었다면 버스에 오르고 내릴 때 한발 한발 어떻게 내디뎌야 하는지, 그런 디테일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을 거다.


  내가 깁스를 한 시기에 마침 3학년 수영 교육 일정이 잡혀있었다. 교육은 근처 다른 초등학교에 있는 수영장에서 한다. 그곳까지 가려면 우리 학교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가 우리 반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이 날 데리고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그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수영교육 기간 중에 병가를 내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 기간엔 잘 걸을 수 있는 강사님께서 우리 반 학생들을 수영장까지 데리고 가실 거라고. 그렇게 일주일 병가를 사용했고, 퇴근길에는 옆반 선생님 차를 얻어 타면서 깁스의 시간을 어찌어찌 무사히 보냈다. 






  깁스를 풀고 바로 운전연수를 받았다. 남편은 "핸들을 이렇게 돌려! 저렇게 돌려"라고 가르쳐주었다. 이 사람과는 진작 안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가 어떻게고 저렇게가 어떻게지? 그 언어를 도저히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내 인생 최고의 운전 스승님을 만났다. 역시 서울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살고 있다(알럽 서울!). 심지어 그 운전 전문가는 내가 그때 살던 행당역 근처에 사셨다. 온 우주가 나에게 "넌 그냥 배우기만 해, 내가 다 준비해뒀어"라고 말했다. 운전 비법들을 담은 책도 쓰셨고, 팟캐스트에도 출연하시고, 스타킹에도 나오셨던 분이다.


  스승님만의 창의적인 커리큘럼을 따라 올림픽대로, 자유로, 성수동, 북악 스카이웨이 등을 누볐다. 꼭 중간에 커피 자판기는 한 번씩 들른다. 자판기 커피를 좋아하시는 스승님이다. 7회 수업의 마지막 날은 우리 아파트 단지 중간에 스승님을 잠시 내려드리고 혼자서 단지를 3바퀴 돌았다. 그 모습을 스승님이 뿌듯하게 지켜보셨다. "내일부터 차 몰고 출근해. 나중에 퇴직하면 트럭 몰고 물건 팔러 다녀도 되겠어." 난 1종 보통 면허라 12톤 미만의 화물차를 몰 수 있다. 내 인생 그런 엄청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내 퇴직후 노후까지 설계해주신 스승님의 칭찬은 그 후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꼭 들어야 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한 번은 복잡한 대학병원 주차장에서 스승님의 공식대로 빈 공간으로 딱 주차를 했더니 주차 관리요원이 "나보다 더 잘하네요"하며 깜짝 놀랐다. 내가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 그런 거 잘한다고 칭찬 듣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훌륭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은 효과다. 장롱면허를 꺼내 세상 밝게 빛나게 해 주신 스승님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더 많은 장롱 면허들에게 등불을 밝혀 주세요.






  도로 위의 오스카 와일드랄까. 명언 제조기랄까. 지금도 가끔 운전 중에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차와 간격! 정차할 때는 앞차 뒤 범퍼와 내차 사이에 바닥이 보일 만큼 떨어져야지." (이건 지금 잘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승님 용서하세요.)

"저쪽에서 좌회전하지? 지금이 우리가 우회전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야."

"유턴할 땐 오른쪽 보닛 끝을 봐."

"도로 가운데로 가는 게 처음에는 힘들어. 오른발을 도로 가운데 놓는다고 생각해."



매거진의 이전글 바떠레 가는 길(밭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