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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Nov 17. 2021

문해력만이 문제일까요?

글이 조금 더 친절해지면 안 될까요?

    

  난 요리 바보다. 정성 들여 요리해 그릇에 옮겨 담으면 양념이 잔뜩 묻은 음식쓰레기처럼 보일 때가 많다. 쓰레기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비주얼이 그렇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난해하기만 한 불 조절, 적당히 넣으라는 양념들, 열의에 불타 쉬지 않고 뒤적거리는 손모가지. 총체적 난국이다. 요즘은 마켓**와 비비*가 있어 먹고는 산다. 휴직 전에는 학교 급식이 있어 한 끼는 제대로 먹었는데 참 아쉽다.


  수제비가 당겨 마트에서 수프만 넣어 간단히 끓여 먹는 수제비를 사 왔다. 라면처럼 끓이면 되겠지 싶었다. 집에 와서 포장 뒷면의 조리방법을 확인했다.      


<조리방법>

①물 1300ml, 수제비, 수프를 넣고 끓여줍니다. (수제비가 달라붙지 않게 저어가며 조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호에 따라 물과 수프의 양을 조절하여 드시기 바랍니다.)

②기호에 따라 호박, 당근, 버섯, 파 등을 넣으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이게 정녕 끝이란 말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물음표들.

1. 이 수제비는 몇 인분일까? 포장 어디에도 안내가 없다.

2. 물과 수제비와 수프를 처음부터 같이 끓여야 하는 걸까? 라면은 물이 끓으면 그다음에 면과 수프를 넣는데 말이다.

3. 몇 분을 끓여야 수제비가 익는 걸까? 라면은 3분~4분이다.


  요리 상급이나 중간 레벨인 사람은 이 조리방법 만으로도 수제비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거겠지? 알 수 없는 조리방법이 가스 불 앞의 나를 얼음으로 만들었다. 나 같은 요리력 없는 바보도 먹고살 수 있도록 세상이 조금 더 친절하면 좋겠다.






  나룰도서관 ‘함께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메이블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주인공 헬렌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참매를 길들이며 상실의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을 읽는데 ‘포트와인’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항구? 와인? 뭐 이런 뜻인가? 검색해보니 ‘포르투갈의 주정강화 와인(출처:두산백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정강화 와인’은 뭘까? 또 검색. ‘보통의 와인에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도수를 높인 와인으로...(출처:호텔 용어사전)’ 오잉? 저기, 잠깐만요. 잘못 읽은 게 아니다.


  세상엔 이런 용어 풀이가 존재한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도수를 높인 와인이라니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이런 용어 풀이에도 누군가는 찰떡같이 알아들으려나? 나 같이 와인력이 없는, 와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조금 더 친절한 풀이가 될 수 없을까?     






  EBS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성인 문해력 테스트 11개 문항을 풀었다. 2개 문항을  틀렸다. 이 정도면 나름 양호한 편이라 우겨본다. 틀린 문제의 원인을 다시 확인하니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5번 문제. 다음은 KTX 열차의 ‘다자녀 행복’ 할인 제도의 할인율을 설명한 내용이다. 두 중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 이 할인 제도를 이용하여 ‘서울 – 부산’ 구간의 왕복 승차권을 구입할 때, 총 구매 금액은?

  

  객관식 문제였다. 난 어른 운임과 청소년 운임 모두 30% 할인된 금액으로 계산해버렸다. (할인율) 설명에서 ‘어른 운임의 30% 할인’이라는 문구 대신 ‘어른 운임에 한하여 30% 할인’으로 바꿔준다면 어떨까? 또는 ‘청소년은 할인되지 않음’이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면 조금 더 친절한 안내문이 될 텐데. 


  문제로 출제된 안내문은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실제 사용되는 문구다. 김구라를 비롯해서 EBS <당신의 문해력> 진행자 4명 중 이 문제를 맞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쯤 되면 틀린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내가 이 문제를 틀려서 하는 얘기가 맞다. 개인의 문해력에서만 부족한 점을 찾는 프로그램이 조금 불편했다. 나 같이 문해력 부족한 사람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코레일한테 코 베인다.

      





  어딘가 있을 나 같은 바보들도 쉽게 수제비를 끓여 먹고, 포트와인의 뜻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KTX 열차 할인도 받을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면 좋으련만. 살아가면서 주택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도 있고, 혼인 신고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물품을 구매하고 견적서를 받을 때도 있고, 유급 휴가 날짜를 계산해야 할 때도 있다(모두 문해력 테스트에 포함된 문항들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낯설고 어려운 용어가 득실득실한 글을 읽고,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으니 쉽게 풀어써주면 좋겠지만, 세상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난 학교 행정실만 들어가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행정, 회계 용어들을 듣고 있으면 고구마를 잔뜩 먹은 것 같다. 학교에서 교장실 다음으로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다.


  회계 분야에는 담을 쌓고 살았다. 요리에 버금가는 내 약점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공부를 시작한다며 올케에게 빌려와 책꽂이에 고이 꽂아둔 <<회계의 세계사>> 책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책임 37% 정도는 내 밖으로 미루며 글이 조금 더 친절해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우리 서로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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