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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Dec 01. 2021

혜성으로 간 멋진 친구들

로제타와 필레 이야기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학생들이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문제지 안에 슬그머니 내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주관식 문제의 정답이 '아관파천'이라면 앞장 객관식 문제의 보기 ⑤번쯤에 ‘아관파천’을 넣어준다.

 ’ 뭐지, 뭐지? 그게 뭐였지? 아관. . 뭐였지?’

 단어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아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끙끙 힘쓰는 학생들에게는 한줄기 빛이다. 난 아이들의 탈모 스케줄까지 관리해주는 친절한 선생이랄까.






  이집트의 파라오들도 후대 학자들의 소중한 머리칼을 지켜주고자 힌트를 곳곳에 심어 놓았고, 암호 같은 상형문자를 해독 가능하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학자를 꿈꾸던 장 프랑시스 샹폴리옹. 그는 로제타석에 새겨진 ‘프톨레마이오스  PTOLMES’와 필레에서 발굴된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클레오파트라 KLEOPATRA’에 해당하는 상형 문자를 비교했고, 기호들이 각각 일정한 글자에 대응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프톨레마이오스의 ‘P’와 클레오파트라의 ’P’ 위치에 똑같은 정사각형 기호가 있다. 따라서 정사각형 기호는 문자 ’P’에 해당한다. 뭐 이런 엄청난 것을 밝혀낸 것이다.   


로제타석에 새겨진 ‘프톨레마이오스’와 필레에서 발굴된 오벨리스크에 쓰인 ‘클레오파트라’. 출처: <<코스모스>>. 칼세이건.



  이로써 필레에서 발견된 오벨리스크는 로제타석과 함께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고,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함께 할 운명이 되었다.  


  로제타와 필레. 이 천상의 커플은 2004년에 말 그대로 천상으로 함께 날아갔다. 그들은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구 소련의 최초 관측자 2명의 이름을 땄다.)의 탐사선과 착륙선의 이름이 되었다. 혜성의 이름은 어렵지만 모습은 귀여운 오리를 닮아 오리 혜성이라고도 부른다. 난 조롱이 떡을 떠올렸지만.

빛나는 조롱이 떡?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


  착륙선 필레는 아쉽게도 혜성 표면 착륙 과정에서 몇 차례 튕겨져 나가 태양광 발전이 힘든 지역에 불안정한 착륙을 하게 되었다. 착륙 7개월 뒤 잠시 필레와 로제타의 교신이 있었지만 곧 영구 동면에 들어갔다.


  탐사선 로제타는 2014년부터 혜성 관측 자료를 지구로 전송했고, 2016년 지구에서 보내온 명령에 따라 혜성과 충돌하며 임무를 종료했다. 






  로제타와 필레는 미궁에 빠진 고대 언어를 해석하는 서로의 실마리였다가, 혜성 탐사 미션을 함께 수행하는 동료였다가, 우주 어딘가에서 함께 생을 마감한 동반자가 되었다. 실로 멋진 한 편의 드라마다. 지구와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가슴 설레는 이야기. 작곡가 반젤리스는 로제타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아 '로제타'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문과생이 이해할 수 있는 딱 요기까지가 내 가슴이 설레는 구간이다. 



https://youtu.be/WSa3kkMQ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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