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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Dec 02. 2021

못하는 요리를 해보았습니다.

생강 밀크티라는 걸 해 먹을 수 있을까요?


우유 200ml
물 200ml
편생강 한 톨
홍차 잎 혹은 다른 찻잎 1숟가락
황설탕 1숟가락




  

  글쓰기 모임 밴드에 올라온, 위의 내용을 담은 생강 밀크티 레시피 사진 한 장이 날 요리하게 만들었다. 2018년 한창 밀크티에 빠져 편의점 밀크티를 종류별로 섭렵했던 적이 있다. 집에서도 애정 하는 밀크티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도전!

 

  만들어보자. 재료는 집에 다 있다. 아! 우유가 없구나. 날도 춥고 아침부터 집 밖에 나가는 건 귀찮지만 오래간만에 불붙은 요리 삘을 이대로, 그까짓 우유 하나 때문에 그냥 잠재울 수는 없었다. 눈곱을 대충 떼고 집 앞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 왔다.


  손이 닿지 않는 싱크대 위칸에서 잠자고 있는 계량컵을 꺼냈다. 우유와 물을 분량대로 따랐더니 큰 머그컵도 부족하다. 국그릇을 꺼내 우유와 물을 부었다. 아슬아슬 조심스럽게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간은 2분으로 맞췄다. 2분이면 대충 먹기 좋게 데워질 것 같은 느낌. 요리는 요런 느낌이 중요하지. 


  생강 같은 것을 요리에 넣을 일 없는 나는 그런 재료는 사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올 겨울 유자차에 한 스푼씩 넣어 마실 요량으로 산 꿀 생강차가 있다. 그 안에 잠긴 생강을 사용하자. 재료를 대하는 응용력과 유연한 태도가 단연 돋보인다. 병 안에 든 생강 조각 2개를 꺼내 적당히 데워진 우유와 물이 든 국그릇에 넣어 휘휘 저었다.  


  홍차 잎이 없으니 오래된 블랙티를 넣어야겠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홍차가 블랙티란다. 어쩐지 블랙티를 마실 때마다 홍차 맛이 난다 했다. 이렇게 무식할 수도 있다.

 

  찻잎 1숟가락. 잠시 고민에 빠졌다. 1숟가락은 밥숟가락일까? 찻숟가락일까? 찻잎이니 찻숟가락을 사용했다. 논리적이다.


  설탕보다는 꿀이 몸에 좋겠다 싶어 좋아하는 언니가 캐나다에서 귀국할 때 사다준 꿀을 한 숟가락 넣었다. 계량은 찻숟가락으로 통일했다. 이 또한 논리적이다.


  국그릇에 찻잎이 둥둥 떠다닌다. 찻잎을 같이 마시는 건 아닐 테니 거름망에 걸러줬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니글니글, 미지근한 우유 맛만 강하고, 양도 너무 많다. 이게 맞나? 아까워서 몇 모금 더 마셔본다. 사람들은 진정 이걸 맛있다고 느끼는 걸까?

 

  ‘생강 밀크티’라 검색해보고 충격에 빠졌다. 내가 본 위의 사진 한 장은 재료 설명일 뿐. 사진 아래로 길고 긴 요리과정이 있었다. 요리 재료와 요리 방법은 엄연히 다른 분야 이거늘.


  과학실에 실험 도구가 세팅되어 있다고 다짜고짜 실험부터 하지는 않는다. 실험 준비물과 실험 과정을 꼼꼼하게 읽는다. 기본 중에 기본이다. 실험 순서와 방법을 잘 숙지하고 그대로 따를 것을 학생들에게 매번 강조한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 말씀 더 새겨들을 걸.


  난 재료만 보고 요리법을 혼자 상상했고 엉뚱한 생강 밀크티를 만들었다. 심지어 먹었다. 재료를 넣고 10분을 끓여 우려내고, 우유는 마지막에 넣어 살짝 더 끓여야 했다. 또 한 번 요리 멍청이를 인증했다. 시어머님이 명절 음식을 만들며 내게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넌 뭐 하기 전에 꼭 물어보고 해라."


  모르면 물어보기. 알 것 같아도 물어보기. 느낌 같은 거 느끼지 않기. 다시 한번 요리 앞에 겸손 해져야 한다고, 응용력과 유연한 태도는 멀리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매번 하는 다짐이긴 하다.


  다시 만들 기운은 없지만 진실한 생강 밀크티 맛은 궁금하다. 오늘 실패에 고꾸라지지 않고 내일 다시 도전하겠다.


*요리 레시피 출처: 블로그 'MJ의 후다닥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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